고슴도치섬 움츠린 네몸을 쭉 펴봐
핵폐기장 시름 턴 위도 새봄맞이
망월봉 산자락에 햇살이 따사롭다. 키 작은 동백나무도 아름드리 후박나무도, 길섶 유채밭도 봄빛을 내뿜는다. 깊은금·미영금·논금·살막금… 산굽이 돌 때마다 그림같은 해안이 새로 열리고, 무수히 깔린 깻돌(팥자갈)들은 한 됫박 파도에도 몸비비며 깨쏟아지는 소리를 낸다.
격렬했던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 논란을 원점으로 돌리고 위도가 새 봄을 맞았다. 찬·반으로 나뉘었던 1500여 주민들은 갈등과 반목을 떨쳐버리고 새봄맞이 단장이 한창이다. 포구마다 새우·주꾸미잡이 그물 손질에 바쁘고, 뭍에서 몰려올 우럭·놀래미 낚시꾼들을 맞기 위해 낚싯배들도 점검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한 입으로 말한다. “우리 고슴도치섬 많이 좀 알려 주시요. 도시 사람 놀래 자빠라지게 경치좋은 곳 많응께.”
전북 부안군 위도면 위도. 변산반도 격포항 서쪽 14㎞, 쾌속선으로 40분 거리에 있다. 위도는 풍어를 기원하는 민속굿 띠뱃놀이(무형문화재)나 조기 파시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적잖은 사건·사고로 얼룩진, 가슴아픈 섬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방폐장’ 사태뿐 아니라 서해훼리호 침몰사건(1993년)이 있었고, 더 멀리 일제 땐(1931년) 한햇동안 세 차례나 강타한 태풍에 500여척의 어선이 수장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아픈 기억 몇쪽 간직하지 않은 땅이 어디 있을까. 그 기억의 장막을 걷어내면, 빛나는 섬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30개 섬(유인도 6, 무인도 24)으로 이뤄진 위도(蝟島)의 본섬은 고슴도치를 닮았다. 고슴도치 모양의 입 앞에는 식도(밥섬)가 있다. 토박이말 이름들을 일제가 한자말로 바꿨다. 위도에 딸린 외딴섬 왕등도(旺嶝島)도 본디는 ‘임금 왕(王)’자를 썼었다. 그러나 유달리 깊숙이 파인 바닷가마을인 깊은금, 흔치 않게 벼논이 있었던 논금, 개펄에 대나뭇살을 엮어 세워 고기를 잡던 살막금, 개펄 넘어 마을인 개들넘 등 지금도 정겨운 토박이말들이 많이 살아 있다. 모두 덜 훼손된 환경과 빼어난 경치를 간직한 곳들이다.
여객선이 닿는 파장금항은 대규모 조기 파시로 이름높던 곳이다. 위도 남쪽 바다가 바로 조기잡이의 보물창고였던 칠산어장이다. 위도에서 거래된 조기는 영광 법성포에서 말려져 영광굴비로 거듭났다. 1970년대 초까지도 각지에서 몰려온 수백척의 배들이 위도를 둘러싸다시피 하며 조기를 잡았고, 파장금항에 들어와 수상시장인 파시를 이뤘다. 당시 파장금항은 뱃사람들에게 술 따위를 파는 여성이 600명에 이를 정도로 흥청대는 ‘도시’였다고 한다. 파장금항 마을 뒤쪽엔 미로처럼 얽힌 당시 술집 골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70년대말 다시 키조개잡이로, 80~90년대 ‘낚시꾼들의 천국’으로 불리며 붐비던 위도는, 99년 섬 일주도로(27㎞)가 뚫린 뒤 이젠 깨끗한 자연과 경관을 자랑하는 사철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기암절벽 바닷가엔 홍합과 돌미역·돌김이 깔렸고, 산자락엔 달래·냉이·쑥이 지천이다. 숲길마다 꿩이 날아오르고, 바닷가엔 자맥질하는 수달 무리가 흔하다. 물이 빠지면 딴달래도·큰딴치도·작은딴치도·정금도 등 주변의 작은 섬들이 연결돼,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기암절벽 ‘꿈틀꿈틀’ 용도 이무기도 없건만…
△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위도 용머리 해안을 하얀파도가 하얀거품을 내뱉으면서 빠져나가고 있다. |
채석강은 변산반도 격포항 옆에 있다. 수만권의 책을 층층이 쌓아올린 듯한 모습의, 바닷가 기암절벽이다.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위도에 변산반도의 채석강 뺨치는 바위경치가 숨어 있다. 주민들이 용멀 또는 용머리라고 부르는, 외부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해안 절벽이다. 벌금리와 위도해수욕장 사이, 바다쪽으로 튀어나온 지형의 끝부분, 고슴도치의 앞발에 해당하는 곳이다.
벌금항에서 800m 산길을 걸어들어가 바다쪽으로 내려서면, 거친 파도소리와 함께 얇은 돌판을 층층이 쌓아올린 검은 해안 절벽이 좌우로 500~600m 가량 펼쳐진다. 왼쪽으로 굽이돌아 튀어나온 웅장한 절벽은 수만권의 책들을 쌓아올린 격포 채석강의 모습 그대로다. 판자조각처럼 드러난 바위를 딛고 바닷가로 내려설수록 좌우의 바윗자락과 기암절벽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변산반도 체석강 빰쳐
격포 채석강이 단순히 책을 쌓아올린 모습이라면, 이곳의 바위들은 형태가 변화무쌍하다. 층층히 쌓인 바위 사이에 굽이치는 다른 바윗자락이 틈입해 거대한 바위그림을 그려내거나, 무수한 세월 파도에 시달리며 형성된 바위굴과 벼랑이 가로질러 앞길을 막는다.
물이 빠져야 온전한 절벽 모습이 다 드러나는 것은 격포 채석강과 한가지다. 물이 빠지면 바윗길을 내려가 왼쪽 절벽 밑으로 다가가 웅장한 절벽의 전모를 올려다보며 감상할 수 있다. 오른쪽 절벽길을 감상하려면 깊게 파인 바위 틈을 몇 차례 건너뛰어야 한다. 바윗길을 따라 돌면, 따개비들이 깔려 파도를 뒤집어쓰고 있는 널찍한 바위자락에 닿는다. 바위의 물에 젖은 곳은 온통 김과 파래가 뒤덮고 있다. 이곳 바위절벽이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이 해안이 용머리라 불린다. 이 부근 바위 밑엔 용굴로 불리는 커다란 동굴이 있다고 한다. 벌금항에서 만난 마을 토박이 정재선(67)씨 말로는 “위도와 20여㎞ 떨어진 상왕등도의 용문암까지 연결돼 있는, 이무기가 드나드는 굴”이다. 배를 타고 해안을 돌면 이 굴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바위자락엔 마치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모습이 많다. 간혹 나무둥치 화석 모양의 바위형태도 눈에 띄지만, 동물의 발자국 모습은 발견되지 않는다.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아직은, 이곳에 지천인 홍합을 채취하는 주민들이나 일부 낚시꾼들만이 찾아드는 한적한 곳이다.
여기서 딴달래섬 쪽으로 떨어지는 해넘이도 아름답다. 딴달래섬 왼쪽으로 아득히 바라다 보이는 그림같은 섬들은 논금 해안 앞바다에 뜬 외조도·중조도와 작은 바위섬인 모여 등이다.
용머리 해안 들머리는 벌금항 옛 여객선터미널 옆이다. 80년대까지 간이조선소가 있던 곳으로, 바닷가엔 건조한 배를 내리던 시멘트 구조물이 남아 있다. 터미널 건물 오른쪽 산길을 따라 산책하듯 15분 가량 걸으면 용머리 해안에 닿는다. 오래 전부터 주민들이 이용하던 ‘갯것 다니는 길’(갯것 채취하러 다니던 길)이지만, 잡목이 우거져 길이 희미해졌던 것을 지난해말 몇몇 주민이 힘을 모아 오솔길을 정비했다.
자맥질하는 수달 재주도
△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인 수달 한쌍이 위도의 해안바위에 앉아 경계를 늦추지 않은채 쉬고 있다. 윤운식 기자 3D3Dyws@hani.co.kr">3Dyws@hani.co.kr"' bin go.daum.net>3Dyws@hani.co.kr">yws@hani.co.kr">3D3Dyws@hani.co.kr"' bin go.daum.net>3Dyws@hani.co.kr">3Dyws@hani.co.kr">yws@hani.co.kr |
쓰레기더미 널린 골짜기를 지나 능선에 오르면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 길은 위도해수욕장 쪽으로 이어지고, 오른쪽 길은 용머리 해안 오른쪽 끝부분 용굴이 있다는 곳으로 내려서게 된다. 그러나 오른쪽길은 정비가 안된데다, 낭떠러지와 닿아 있어 위험한 길이다. 갈림길에서 앞으로 내려가면 바로 해안 절벽과 맞닥뜨리게 된다. 주민들이 밧줄을 매어 놓아 잡고 내려갈 수 있다.
벌금 여객선터미널 앞에서 시멘트길을 따라 더 가면 작은 두 바위섬까지 이어진다. 오재미라 부르는 곳으로, 용머리의 오른쪽 끄트머리가 바라다보이는 지점이다. 운좋으면 바위절벽 밑에서 자맥질하는 수달 무리를 만날 수도 있다.
일주도로 굽이굽이 점입가경
보석같은 깻돌해안 가슴 후련
붉게 타는 해넘이 탄성 절로
△ 위도 논금에서 바라본 해넘이는 이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이다. 윤운식 기자 3D3Dyws@hani.co.kr">3Dyws@hani.co.kr"' bin go.daum.net>3Dyws@hani.co.kr">yws@hani.co.kr">3D3Dyws@hani.co.kr"' bin go.daum.net>3Dyws@hani.co.kr">3Dyws@hani.co.kr">yws@hani.co.kr |
위도를 가장 빨리 파악하는 방법은 차를 타고 일주도로를 달리는 것이다. 차를 배에 싣고 들어가 둘러볼 수도 있고, 파장금에서 출발해 섬을 도는 공영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그러나 버스가 단 한대뿐이어서 이곳 저곳에 머물며 버스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점이 단점이다. 택시도 한대뿐이다.
섬 일주도로 총 길이는 27㎞. 아스팔트와 시멘트가 번갈아 깔린 왕복 2차선 길이다. 둘쭉날쭉한 해안선이 아름다운 풍경을 펼쳐보이는 북서쪽 바닷가길이 더 아름답다. 벌금항과 오재미쪽 경치를 둘러본 뒤 고개를 넘으면 잘 정비된 위도(고슴도치)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위도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깊숙한 만 안에 펼쳐진 단단한 모래밭이 유명하다. 차 바퀴도 안 빠져 흔히 ‘공설운동장’으로 불린다. 섬 주민의 식수를 100% 공급한다는 상수원과 정수장을 지나 언덕에 오르면 좌우로 해안 경관을 감상하기 좋은 전망대를 만난다. 돛단배 형상이 서 있는 곳. 해안 양쪽에 돌출한 악어 모습의 해안과 섬들이 이채롭다.
이어 나타나는 유달리 깊숙이 들어온 만이 깊은금(지픈금)이다. 고슴도치의 자궁에 해당하는 곳으로, 일년 내내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방폐장’ 자리로 꼽혔던 곳이기도 하다. 바닷가는 모래가 아닌 자디 잘고 납작한 깻돌(팥돌 또는 콩돌)들로 채워져 있어 밟는 느낌이 색다르다. 깊은금에서 복주머니 형상의 미영금으로 넘어가면서 바닷가 절벽 옆에 서 있는 물개바위를 볼 수 있다.
△ 위도 고슴도치 해수욕장은 물이 빠지면 단단하고 아름다운 백사장을 드러낸다. 3D3Dyws@hani.co.kr">3Dyws@hani.co.kr">3Dyws@hani.co.kr">yw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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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금 지나면 논금. 영화 ‘해안선’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촬영된 곳으로, 본디 이 섬에 흔치 않던 벼논이 있던 곳이어서 논금(답구미)으로 불린다. 역시 깻돌이 깔린 해안인데, 옹기종기 모여 수묵화같은 그림을 보여주는 내조도·외조도·중조도 등 섬들 모습이 압권이다. 해넘이 또한 아름답다. 촬영세트들은 오히려 이 해안 경치를 해치는 걸림돌이다.
스님이 한분 산다는 거륜도를 바라보며 살막금(전막)으로 든다. 대나무나 싸리나무 등으로 살을 만들어 바다에 세워두고 물때를 이용해 고기를 잡던 지역이다. 위도 종주 산행길 출발지로 고슴도치의 꼬리쪽이다. 더 가면 위도띠뱃놀이의 본고장 대리가 나온다. 해마다 정월 산자락의 당에 제를 지내고 띠로 만든 배를 띄우며 풍어와 안녕을 비는 민속굿이다. 대리는 본디 대저목(큰돼지목)이었는데, 줄어져 대리로 불린다. 다음 마을은 소리로, 옛이름은 소돌목(작은돼지목)이었다. 한굽이 돌아가면 치도리가 나오고 큰딴치도·작은딴치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론 쌍둥이 형제 전설이 깃든 형제섬이 바라다 보인다. 두 딴치도는 물이 나면 위도와 연결되는데, 모래가 섞인 단단한 개펄에서 백합조개 등이 많이 난다.
더 가면 출발했던 망월봉 자락의 진리의 반대쪽 마을 개들넘이 나온다. 산자락을 에돌아 넘어가면 진리·파장금항길이 갈리는 시름마을이다. 차 타는 시간만 20여분 정도인데, 곳곳에 멈추고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반나절 시간이 모자란다. 섬 해안을 둘러보는 유람선이 없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병학 기자
동으론 변산반도, 남으론 선운산 ‘한눈에’
아담한 망월봉 거침없는 전경
위도는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해안선과 아담한 산봉우리들을 고루 갖춘 섬이다.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망월봉(255m)을 비롯해 정금봉(242m)·도제봉·파장봉 등 산봉우리들이 줄줄이 솟아 빼어난 전망대 구실을 하고 있다.
그중 최고봉 망월봉은 망봉제월(望峯霽月)이라 하여, 이 산봉우리에서 떠오르는 보름달 모습을 위도8경의 하나로 꼽는다. 망월봉 등산로는 세 코스가 있다. 파장금항 옆마을 시름에서 오르는 길(1.2㎞)과 개들넘에서 오르는 길(1㎞), 서해훼리호 참사 위령탑쪽 코스(0.8㎞) 등이다. 개들넘쪽 길은 다소 험하고, 위령탑쪽은 짧고도 완만한 편이다.
망월봉은 키작은 소나무들과 잡목들이 덮인 산이다. 산길과 정상에 이렇다할 그늘이 없는 대신, 전망을 가로막는 것들이 드물어 전후좌우로 펼쳐진 섬 경치를 살펴볼 수 있다. 오르는 산길엔 붉은 맹감나무 열매들이 널렸고, 진달래는 가지 끝에 바짝 힘을 주며 꽃잎 터뜨릴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곳곳에 작은 동백나무들도 나타난다. 산길 중간에 나무의자를 마련해 놓아 앉아 쉴 수 있다.
꼭대기에 오르면 동쪽으로 변산반도 격포쪽 산줄기들이 손에 잡힐 듯하고, 북쪽으론 식도와 상·하 왕등도, 남쪽엔 칠산바다와 영광 땅, 고창 선운산도 눈에 들어온다. 안내판과 돌탑이 있는 꼭대기는 옛날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였다는데, 사각형 석축 흔적이 있고 그 위에 헬기장 자리가 있다. 왕복 1시간30분이면 여유있게 다녀올 수 있다.
위도 산봉우리들을 잇따라 밟으며 섬 전체를 조망하는 등산로도 마련돼 있다. 세가지 코스가 있다. 종주 코스는 위도 남서쪽 끝자락 살막금에서 올라 망금봉~도제봉~망월봉을 거쳐 위령탑 쪽으로 내려오는 12㎞ 산길이다. 6시간 가량 걸린다. 위령탑이나 시름에서 올라 망월봉~도제봉~진말고개~위도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5㎞ 산길(2시간30분), 위도해수욕장에서 올라가 진말고개~치도~망금봉~살막금으로 내려가는 7㎞ 산길(3시간30분)도 있다.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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