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시집

재의 수요일

그낭 그럿게 2006. 3. 1. 14:36
  재의 수요일 아침에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을 생각하십시오"

 

      이마에 재를 얹어 주는 사제의 목소리도

      잿빛으로 가라앉은 재의 수요일 아침

      꽃 한 송이 없는 제단 앞에서 눈을 감으면

      삶은 하나의 시장기임이 문득 새롭습니다

 

      죽어가는 이들을 가까이 지켜보면서도

      자기의 죽음은 너무 멀리 있다고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 나도 숨어 있습니다

 

      아름다움의 발견에 차츰 무디어 가는

      내 마음을 위해서도

      오늘은 맑게 울어야겠습니다.

 

      먼지 낀 마음의 유리창을 

      오랜만에 닦아 내며 하늘을 바라보는 겸허한 아침

      땅도 사람도 가까워질 수 있음을 새롭게 배웁니다

 

      사랑없으면 더욱 짐이 되는 일상의 무게와

      나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조차

      담담히 받아 들이는 일

      이 또한 기도의 시작임을 깨닫는

      재의 수요일 아침입니다

             

                이해인 '재의 수요일 아침에'

 

 

      재의 수요일이다.

      어느 경상도 신부님은 '재'의 수요일을  한동안

      '죄'의 수요일로 알았었다는 말이 시나브로 생각이 나는..

 

      년전에  쓴 '재의 수요일'에 대한 단상,

 

      사순절의 첫 날, 재의 수요일

      레지오마리애 주회,.. 사순절에 절제할 것,.. 지킬 것.

      성당에 갈 때 택시를 타지 않을 것.

      어찌어찌하다가 급해져서 택시를 타고 말았다.

      주회에 지각할 것 같은 조바심...

      지하성당에 내려가 문앞에 놓인 꽃묶음을 들고 2층 주회실로

      올라와 문을 빼꼼 열어 보니 아무도 없다.

      "어머, 아무도 없네.."

      혼잣말에 문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난롯가에 앉아 있던 

      글라라자매가 정색을 하고 따진다.

      "왜 아무도 없다는거래..나는 사람아닌가.."

      "..."

      그저 띠잉~ 할 말이 없다...

      적막 야릇한 분위기...

      -사순절인데... 여러가지 절제 희생 양보..어쩌고 결심일랑 해 놓곤..

      그럴땐 살짝 당혹감이 들더라도 얼른

      "어머, 거기 있었네~ 미안~ 못 봤다네~"

      했어야 하는건데....               

        

      돌아 올 때는 걸어서...

      빵집에 들러서 빵을 사고, 우체국 지나며 우표랑 엽서도 사고..

      초등학교 담안도 기웃기웃 해 보면서 걸어서 오는 길은 

      주변의 정경이 정답게 다가오는..

 

      아파트 들어서서는 화단을 유심히 들여다 보게 되는.

      개나리 꽃망울은 아직 기척이 없지만 

      오호~ 쑥이 돋았다.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것은 질경인지..

 

      점심은 걸렀다.

      저녁 . '재의 수요일 미사'

      밤바람이 꽤나 차다.

      겨울코트를 입었는데도 덜덩덜덜 떨릴 정도로 추운게 으슬으슬하다.

      밤길 추위에 걸어 갔다간 감기몸살로 입원해야 할 걸.

      지난 주일날 벌벌 떨며 야외 행사 후 몸살감기기운을 펭게로 

      또 택시를 타고 갔다.

      미사가 끝나니 남편의 차가 성당앞에 대기하고 있다.

 

      사순절 첫 날,

      절제, 희생, 양보.

      지킨 것은 하나도 없다.

      첫걸음조차 어긋나 버렷다.

      그나마 한 가지는..

      그전부터 꽤나 갖고 싶은 접시세트.

      잠자리에 누워서도 아른아른 생각이 나는 마음에 꼭 드는 접시 세개.

      어제 내 것으로 찜하려다 참았다.절제하는 마음으로.

 

      통회와 보속의 표시인 자색제의를 입으신 신부님께서

      머리에 얹어 주신 재...

      한 줌 재와도 같은 저, 멜라니..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 갈 것을 생각하여라'

      아 아, 주님 예수님,

      이번 사순절에는 나 자신의 본모습을 바라 보도록 노력을 해보리라.

      나 자신의 본보습을 대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주님께서 주신 40일의 시간..사순..

      하느님 앞에서의 내 모습에 대한 성찰,

      은총의 시기, 구원의 시기로 사순절을 맞이 하느냐  마느냐는

      오로지 나의 몫,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얹어진 재의 축복.

      잊지 않겠나이다...

 

      2004년 재의 수요일에...

 

 

      고단함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한 밤 문득 깨어나서 '재의 사순절에' 단상을 되새겨보는.,,

      

      머리에 재를 얹으며 인생무상을 깨우치고

      진정한 통회와 보속을 해야 하는 사순의 시작,

      부활의 영광과 기쁨을 오롯하게 만끽하자면 

      사순의 첫날을 맞갖게 맞이 해야겠지...    

 

      

       *사순을 기해 지향해야 할 중요한 세가지 

     

       다스려야 할 세 가지 :  성질, 혀, 행위

       사랑해야 할 세 가지 :  현명한 사람, 덕있는 사람, 순수한 사람

       칭찬해야 할 세 가지 :  검소함, 부지런함, 신속함

       가져야 할 세 가지    :  용기, 애정, 관대함

       얻어야 할 세 가지    :  마음의 선량함, 목적의 달성, 명랑함

       주어야 할 세 가지    :  필요한 이에게 도움, 슬퍼하는 이에게 위안,

                                     가치있는 이에게 올바른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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