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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으름을 아시나요?

그낭 그럿게 2005. 7. 19. 12:09


▲ 맛난 으름도 아름다운 꽃과 풋과일을 과거로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과거를 기억하고 계신가요? 생각만 해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짜릿하게 기억되는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과거입니까? 아니면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질 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운 과거입니까. 설마 과거가 없다는 말씀을 하진 않겠지요? 과거 없는 현실은 존재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 동토의 겨울이 지나고 아름답게 피어나 으름의 과거가 된 으름꽃입니다.
자연이 주는 감동
과거란 게 참 묘한 힘이 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대개의 과거들은 뒤돌아 볼 즈음엔 이미 아름답게 기억되니 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현실도 지나고 나면 아름답고 소중하게 기억되고 그립기조차 한 그런 과거가 됩니다. 심지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되었던 과거 속의 현실조차 극복하고 나면 뿌듯하고 보람된 과거가 되니 시간이 흐르며 형성되는 과거란 것은 대단한 착각을 주거나 가치를 변모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 남여유별을 아는지 한 넝쿨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핍니다. 암꽃은 열매를 맺어야 하기에 크고 수꽃은 작지만 알찬 모양입니다.
자연이 주는 감동
떳떳하지 못해 감추고 싶은 대개의 과거들은 힘들고 괴로웠던 과거라기보다는 일신의 영달을 쫓거나 작은 이기(利己)를 위해 양심을 저버리며 누렸던 화려한 과거일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그 현실을 극복하느라 겪게 되는 대개의 고통은 시간이란 것이 여러 가지 형태로 충분히 보상 해 줍니다.

그 보상은 형편을 좋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원하는 뭔가가 성취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을 저버리며 누렸던 화려한 과거는 시간이 지나며 그 부끄러움이 덕지덕지 두께를 더해가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고통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 꽃이 지고 작은 열매가 맺혔습니다. 탯줄 흔적처럼 암꽃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자연이 주는 감동
나이 드신 어른들 입장에서 과거에 어떤 자리에 있었고 무엇을 하였느냐는 아주 가소로운 이야깃거리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사회로부터 어른이라고 분류되는 현실에 건강이 나쁘거나 과거의 행적 때문에 손가락질 받는다면 과거의 고관대작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현실을 고통스럽게 하는 굴레일 뿐일 겁니다.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가졌음에도 사리분별력 없이 행동하는 어른들을 보면 철없는 젊은이 눈에조차 세상은 헛산 늙은이의 추잡한 트집이나 노망쯤으로 밖에 안 보입니다.

▲ 여럿 중 세 개의 으름만 남아 햇볕을 즐기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주는 감동
침이 꼴깍 넘어가도록 맛나게 기억되는 으름의 일생(?)을 봄부터 줄곧 지켜보았습니다. 동토의 겨울을 지나 봄이 되니 아주 화사하고 수수한 꽃을 피웠습니다. 여느 꽃들처럼 한 송이 꽃에 암술과 수술이 동거하는 그런 꽃이 아니었습니다. 남녀유별의 유교적 사상을 가졌는지 넝쿨은 같아도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었습니다.

암꽃은 아무래도 열매를 맺어야 하는 역할 때문인지 임신할 엄마의 배 만큼이나 넉넉한 크기를 가졌고 수꽃은 작지만 야물게 생겼습니다. 벌이 그랬는지 바람이 그랬는지 암꽃이 수정되니 수꽃은 삭아들고 꽃 대신 작은 덩어리가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봄에 보았던 으름 꽃은 이미 과거의 아름다움이 되었습니다.

▲ 가을바람과 함께 두툼한 껍질을 가진 으름이 되었습니다. 꽉 찬 알맹이 때문에 껍질에 금이 가는 아픔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주는 감동
햇살 받고 비 맞으며 좋아도 했겠지만 불어대는 바람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한껏 매달려야 하는 힘겨움도 있었을 겁니다. 열매가 커지는 뿌듯함도 있었겠지만 껍질이 갈라지는 고통도 겪어야 했을 겁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며 현실을 견디다보니 누구라도 침을 꿀꺽 삼키게 하는 탐스런 열매가 되었습니다.

버려진 듯 산속에서 열매 맺는 으름에게도 꽃과 풋과일이라는 과거가 있습니다. 지켜보는 으름의 과거는 아름답고 소중했습니다. 누구를 해하지 않으며 자신을 지키려 안간힘을 쓴 으름의 과거를 알기에 산 속 으름이 더없이 맛나게 느껴지는 지도 모릅니다.

▲ 이쯤 되면 봄과 한여름에 피우고 맺었던 꽃과 풋과일은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버립니다.
자연이 주는 감동
부끄러울지도 모르는 과거를 감추기 위해 안간힘 쓰는 위정자들에게 으름의 맛남과 아름다운 과거를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습니다. 감추고 싶거나 드러내지 못하는 과거는 분명 이기를 쫓느라 저버린 양심이 들려주는 통곡 같은 또 다른 형태의 아픔입니다. 실컷 통곡하십시오. 실컷 통곡하면 속이라도 후련해질지 모릅니다. 그 통곡이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갈의 양심선언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 결실이 되었습니다. 트인 껍질 속에 맛난 으름이 가득합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아직 있지 않음을 알기에 으름이 더 맛나게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출처 : 중년의 향기속으로...
글쓴이 : 촌아줌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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