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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서진 아름다운 처녀의 사랑이야기

그낭 그럿게 2014. 10. 9. 00:32

 정서진의 표지석

<인천 서구 정서진에 대하여>

우리나라에 정동진이 있다면 당연히 정남진과 정서진도 있을 터, '정남진' '정서진'도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정남진' '정서진'은 지명이 아니다. 서울의 광화문으로부터 경도와 위도에 위치한 곳이다. 정동진, 정남진, 정서진, 중강진은 광화문을 기준으로 그 표시가 나타난다. 다음 아래는 그에 대한 도표이다.

 

[광화문 기준의 정서진]

광화문 기준
동서남북의 간략한 설명
동서남북
1
정동진
광화문의 동쪽 끝 나루터를 말한다.

2
정남진
광화문의 남쪽 끝 나루터를 말한다.

3
정서진
광화문의 서쪽 끝 나루터를 말한다.

4
중강진
광화문의 북쪽에 위치한다.


<인천 서구 정서진 지도위치 소개>

[정서진 위치지도]
⊙ 정동진, 정남진, 정서진, 중강진
정동진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에 있는 동해바닷가로, 해돋이의 명소이다.
조선시대 한양의 광화문 기준으로 정동(正東)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남진 - 서울의 정남쪽에 있다고 알려진 나루터이다. 광화문으로부터 정남쪽을 가리키며 전라남도 장흥군에 해당한다.
정서진- 서울근교 한번쯤 가보고 싶은 그곳, 경인아라뱃길 인천 경인항
이곳은 인천시에서 정서진이라 명명하여 해넘이축제 등 다양한 이벤트행사를 진행한다.
이곳은 해넘이전망대, 선상체험공원, 서해갑문, 정서진조형물, 해안산책로, 아라빛섬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중강진 - 한반도북부, 압록강 상류의 남안에 위치한다. 북쪽은 주오하인민공화국, 동쪽.동남쪽은 량강도 김형직군, 서쪽.서남쪽은 자성군과 접한다. 이곳에는 백두산인근의 삼지연군 다음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인 중강진이 있다.


 

정서진은? 인천시 서구 오류동 1539의6번지에 있다. 위도 상으로 37도34분08초이다. 경인아라뱃길 인천여객터미널은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하여 정동진의 대칭점으로 정서쪽 육지 끝에 위치한 나루터에서 유래한 곳이다. 이곳이 바로 인천시 서구에서 처음 지정한 정서진(正西津)이다.

지난 신묘년 마지막 날에 맞춰 열린 '제1회 정서진 해넘이 축제'에는 많은 인파가 모여들면서 해넘이 명소 '정서진'을 예고하고 있다. 그날 분위기는 대성황이었고 축제 열기가 아라뱃길을 녹이며 피날레를 장식하는 불꽃놀이가 정서진의 밤하늘을 수놓으면서 축제는 절정에 달했다. 사실 지난해 3월 정서진을 처음 지정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가 우려했고, 또다른 지자체에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정서진으로 지정하려는 장소가 삭막한 바닷가 허허벌판이었고, 이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정서진 지정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구의 정서진은 정동진의 유래와 부합하는 정확한 위치로 확인되고, 천년의 물길이 열린 경인아라뱃길 경인항의 해양인프라와 만나면서 언론과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한 것이다. 이러한 관심이 제1회 정서진 해넘이 축제로 이어져 2만 명 이상의 인파가 찾아오는 성공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옛날부터 정서진 지역은 '장모루'라는 지명으로 불리며 '구슬원'이라는 숙박시설과 '발아장'이라는 쑥시장이 번창하여 전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유서 깊은 장소이며, '장모루 아름다운 처녀'에 관한 설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 설화는 다음과 같다. 시천동은 고려 때 장로루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남부지방에서 고려의 왕도인 개경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많은 사람이 하루를 묵어가는 장소였다고 한다. 하루는 전라도에 사는 대가집 아들이 천리 길을 걸어 과거를 보러 가던 도중 이곳 장모루촌에서 하루를 묵어가기로 했다. 장모루여각 주인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젊은 선비는 그 아름다운 여인에게 첫 눈에 반하고 말았다.

청년선비는 과거를 이틀 앞두고 개경으로 떠나 과거시험에 응시를 하였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 청년은 되돌아 오는 길에 또다시 장모루여각에 돌아와 여각주인 딸과 사랑에 빠졌다. 여각 주인은 딸과 선비를 아무리 말리려고 했으나 선비는 막무가내로 "딸을 사랑한다"고 하며 "장모루촌에서 살겠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주인은 방을 하나 내줬다. 선비는 장모루촌에 거주하면서 여관의 잔심부름을 하며 딸과 사랑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선비집에서는 수개월이 지나도 과거를 보러 간 한량이 둘째아들이 나타나지 않아 수소문 끝에 아들이 '장모루촌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형을 보냈으나 고집이 센 동생은 형의 설득에도 막무가내였다.

형은 고심 끝에  아름다운 처녀를 설득을 했다. 그래서 처녀는 선비총각과 가락지를 나눠 끼고, 형을 따라 고향으로 내려갔다. 장모루촌 여인은 매일 뒷뜰에 정한수를 떠놓고 낭군의 과거 합격을 빌었다.
선비총각은 보고 싶은 아름다운 여인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3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하여 다음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했다. 그러나 대가집에서는 평민출신인  여인과 결혼을 하는 걸 반대하면서 아름다운 처녀를 잊어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총각선비는 부모님과 형님께 말씀드리기를 "본인을 위해 3년동안 정성을 다하여 과거시험 합격을 빌어온, 사랑하는 여인을 그냥 내쳐버릴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수개월 동안 아버지와 형님을 설득하여 끝내 장머루촌 아름다운 여인과 혼인을 한 후, 아들 딸을 낳고 살았다는 아름다운 설화가 있다.

그 당시에도 평민출신인 여각주인 딸과  대가집 양반 자식의 결혼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와 같이 힘들게 사랑의 결실을 거둬 정서진은 더욱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서진은 지리적으로 송도와 한양으로 가는 해상교통의 중요한 뱃길이었고, 사람들에게는 한강을 건너 송도나 한양지역으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육로였다. 그런 만큼 사람들이 많이 모였으리라 짐작된다. 지금의 정서진도 경인아라뱃길 경인항이 있어 서울과 서해의 길목 역할을 하고 있으니, 장모루와 비교해 우연의 일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정서진이 예전에 번창한 장모루의 명성을 되찾아 발아장은 현대적인 쇼핑센터로, 구슬원은 놀거리와 먹을거리가 있는 초대형 숙박시설로 탈바꿈하여 인파가 넘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정서진은 이제 첫 걸음을 뗀 단계로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하면서, 서해의 일출과 일몰, 그리고 아름다운 섬 세어도와 함께 주변의 다양한 관광자원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고, 경인아라뱃길의 해양 인프라와 인천 앞바다의 섬과 유람선이라는 독특한 관광 콘텐츠가 접목된다면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 본다. 지금 인천은 제2의 부흥기를 꿈꾸며 활기찬 비상의 날개를 펴고 있다. 이제 처음 닻을 올린 정서진 해넘이 축제의 대성황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올해도 노을이 아름다운 인천 정서진에서 전국노래자랑, 열린음악회, 자전거, 마라톤, 걷기행사 등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한 번쯤 인천 정서진에서 낭만을 즐기는 여유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

그리하여 먼 훗날 아름다운 정서진이 "과거 쓰레기매립장었던 드림파크와 함께 세계적인 유명관광지로 변모했다"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인천 아리랑

1절 >

 아리랑 쓰리랑 섬나들이 가보세

 연안부두 저 갈매기 길을 물어 떠나보세

 백령도라 콩돌해안 심청이 전설 인당수라네

 대청도엔 동백꽃이 달빛안고 피었소

 연평도라 충민사요, 자월도의 선녀뿌리

 이작도의 부아정, 승봉도엔 촛대바위여

 가고싶은 서해바다 섬들이 너무 많은 도시 인천아리랑 춤을 추세

 얼씨구나 좋구나 애간장을 녹여주는 섬타령이구나

 에헤애 데헤야 에야 데야 인천 아리랑

 

2절 >

 아리랑 쓰리랑 섬나들이 가보세

 연안부두 저 갈매기 길을 물어 떠나보세

 덕적도라 진말해안 비조봉일출 낙조대라네

 선미도엔 최고높은 등대하나 서 있소

 석모도라 보문사요, 볼음도의 은행나무

 무의도의 국사봉, 소야도엔 장군바위여

 보고싶은 서해바다 섬들이 아름다운 도시 인천아리랑 노래하세

 얼씨구나 좋구나 애간장을 태워주는 섬타령이구나

 에헤애 데헤야 에야 데야 인천 아리랑

 

출처 : 정서진족구회
글쓴이 : 웃는바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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