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따라 음식 좀 챙겨 먹는다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 유래와 출처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전설처럼 내려오는 격언들이 몇 가지 있게 마련이다. 삼강오륜이며 세속오계는 못 외워도 이런 격언들은 한번 들으면 머리에 쏙 들어와 잊혀지지도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 격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봄 쭈꾸미 가을 낙지’다. 그렇다. 가을은 낙지가 가장 맛있다고 하는 계절이다. 수산 전문가들 말로는 ‘활력이 강하고 다음해의 산란을 위해 영양을 몸에 축적’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을 낙지 먹으려면 쇠젓가락이 휜다는, 역시나 먹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이 낙지 앞에서 흐뭇한 얼굴로 늘 되새기는 속담처럼 말이다. 낙지 어획량도 가을에 접어들며 늘어난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낙지도 조금씩 많이 잡히기 시작하고 금값이던 몸값도 조금씩은 떨어진다.
낙지는 의외로 한국 사람들과의 인연이 오래된 어종이다. 『자산어보』나 『동의보감』에도 어엿하게 등재되어 있고, 『규합총서』에도 문어와 함께 올라 있다(『규합총서』에선 문어를 ‘팔조어’, 낙지를 ‘소팔조어’라고 불렀다. 발이 여덟 달린 작은 물고기 정도의 뜻이 되겠다). 뿐만 아니라 낙지, 특히 산낙지는 최근 몇 년 사이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상징하는 엽기 음식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이 산낙지를 먹는 장면이 외국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덕분으로, 외국의 모 오락 프로그램에선 한국을 찾아와 산낙지를 먹게 하는 과제를 출연자들에게 부여하여 화제가 되었다. 꽤 오래 전, 한승원 선생의 소설 『낙지 같은 여자』가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적도 있는데, 당시 신인급이던 연기자 송옥숙 씨가 소주를 곁들여 산낙지를 먹던 모습(그녀는 이 드라마에서의 열연으로 인기 연기자의 반열에 올랐다)은 아직도 간간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다. 확실히, 낙지가 사람들에게 뭔가 원초적이고 생명력이 가득한 이미지를 주기는 하는 모양이다. 이미지야 어떻든 간에 낙지는 맛있고 영양 많은 식재료다. 요즘에야 아주 맵게 낙지볶음을 만들어 먹거나 갈비·곱창·해물 등속의 재료들과 전골을 끓여 얼큰하게 먹기도 하지만, 원래 낙지는 그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살려 양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정석이었던 듯하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두 가지의 낙지 요리가 등장한다. 하나는 손질해 한 치 길이로 낙지를 끓는 물에 데쳐 초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낙지백숙이고, 다른 하나는 달걀 옷을 입혀 지진 낙지전유어다. 두 가지 다 연한 양념과 단순한 요리법을 쓰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낙지는 술안주에 많이 쓰이며, 붉은 색이 나도록 익히면 단단하고 맛이 없으니 살짝 익히라고 되어 있다. 고락이 있는 채로 데치라고 제안하고 있는데, 낙지의 뱃속에 들어 있는 먹물이나 먹물주머니를 가리켜 ‘고락’이라고 부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낙지는 주로 갯벌에 산다. 자연히 낙지의 산지도 서해안을 따라 분포한다. 하지만 방조제가 생기고 갯벌의 환경이 달라지면서 낙지가 잡히는 장소도 조금씩 달라진다. 어르신들은 요즘 낙지로 유명한 ‘본 고장’에서 잡히는 낙지도 옛날만은 못하다고들 하신다. 그럴 법한 말씀이다. 최근 낙지의 본고장으로 꼽히는 지역이라면 전라남도 무안 일대다. 무안, 벌교, 함평, 장흥, 신안, 영암 등이 낙지의 맛과 품질을 두고 명성을 겨루는 양상인데, 이 중 무안은 낙지로 특화된 ‘낙지골목’으로 유명하다.
무안 낙지골목은 무안읍 버스터미널과 붙어 있다. 터미널에 면하여 낙지와 살아 있는 어패류를 파는 시장 골목이 들어서 있는데, 예전엔 이런 ‘횟집’에 들어가 낙지를 사서 그 횟집에 붙은 작은 방이나 가게에서 먹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안 낙지가 유명해지고, 낙지 음식을 전문적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하나 둘씩 생기며 다시 골목을 형성했다. 이것이 ‘구 낙지골목’과 ‘신 낙지골목’인데, 새로 생긴 골목들의 음식점들은 옛날식 가게들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다. 신-구로 나뉜다 해도 이 두 골목들은 붙어서 형성되어 있으니, 사실 굳이 구분한다는 것이 큰 의미는 없어 보일 정도다. 원래 호남 지역에선 세발낙지, 낙지죽이나 낙지호롱 등의 음식이 대표적인 지역 음식이었는데, 낙지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낙지 전문 음식점에선 낙지를 재료로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어 팔고 있다. ‘낙지’가 붙은 음식만 해도 한 식당에 일고여덟 가지가 넘는다. 무안 터미널 뒤 신 낙지골목에 있는 향림식당에서 낙지 음식들을 한 가지씩 먹어 보았다.
낙지를 먹으러 가면 왠지 세발낙지부터 먹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오래된 농담이지만, 세발낙지의 발은 세 개가 아니라 여덟 개. 세발이란 이름이 발이 가늘다는 의미임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보통의 낙지는 산낙지로 먹을 때 잘게 썰어 먹지만, 세발낙지는 머리와 전체 크기가 작고 연해서 통째로 먹는다. 현지 분들이 직접 가르쳐 주신 세발낙지 먹는 법은 이렇다. 일단 나무젓가락 끝에 낙지 머리를 넣어 끼워 고정시킨다.
그 후 세발낙지의 다리를 젓가락에 돌돌 감는데, 야무지게 감는 솜씨에서 낙지 먹기 내공의 차이가 드러난다. 그 후 취향에 따라 기름소금에 찍거나 해서 입으로 쑤욱. 서툰 사람들은 낙지의 가느다란 발이 입술 밖으로 나오는 엽기적인 장면을 연출하지만, 달인들은 깔끔하게 한입에 세발낙지 한 마리를 털어 넣는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물론 이 시점에 소주 한 잔이 곁들여진다. 낙지 요리 중에 무안에서 개발한 것으로 전해지는 것이 바로 ‘기절낙지’다. 이름이 독특한 이 음식은 산낙지를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생겨났다는데, 산낙지를 소쿠리에 바락바락 씻어 기운이 빠진 상태(꿈틀대지 않는 상태)로 상에 낸다. 이때 머리는 살짝 데쳐 구워 물기를 말려 가지런히 늘어놓는데, 결과적으로 상에 나온 기절낙지의 다리는 회백색에 머리는 연갈색으로 ‘투톤’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죽은 척’ 하고 얌전히 있던 낙지를 ‘물초장(식초에 고춧가루 양념을 곁들인 무안 지역의 양념)’에 찍으면 다시 살아나 꿈틀거린다. 기절낙지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왔다고 한다. |
산낙지는 흔히 먹는 ‘전국구’ 방식으로 먹을 수도 있는데, 무안 쪽에선 산낙지로 물회를 하거나 무쳐서도 내놓는다. 산낙지 무침은 소금과 고춧가루에 무채와 야채를 약간 곁들여 무치는데, 일견 굴 무침과 방법이 비슷하다. 담담하고 고소한 맛이 좋고, 산낙지라는 재료의 맛이 잘 살아 있다. 이 산낙지 무침과 비슷한 것이 낙지 초무침인데, 여기엔 낙지를 살짝 데쳐 익혀 쓴다. 초무침이라면 보통 초고추장을 생각하겠지만, 막걸리 식초를 기반으로 해서 고춧가루와 물고추(마른 고추를 불려 간 것)로 매운 맛과 색깔을 낸 양념장에 무치면 고추장 특유의 텁텁한 향 없이 매콤새콤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산낙지로 만든 낙지탕탕(또는 낙지당고)도 있는데, 낙지를 잘게 다져서 달걀 노른자와 고추 등을 넣고 비벼 먹는 음식이다. 낙지탕탕은 먹는다기보다는 ‘마시는’ 것에 가깝다. 낙지라면 빼놓을 수 없는 낙지호롱은 호남 지방 특유의 향토 음식으로, 매스미디어에 많이 등장하는 음식이다. 짚 묶음에 낙지를 돌돌 감아 양념해 구운 낙지호롱은 최근엔 짚 대신 나무젓가락을 쓴다. 짚을 구하기 어려워지기도 했거니와 위생상의 문제 때문에 전통 대신 개량을 택한 것이다.
낙지호롱은 고추장 양념을 써서 굽는데, 낙지 요리에는 고추장과 물고추를 함께 쓰면 양념 맛이 은은해지면서 색이 고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연포탕 역시 빠지면 서운한 낙지 음식이다. 서해안 쪽에서 박속낙지탕이 유명한 반면 전남 쪽 연포탕에는 각종 채소들이 풍성하게 들어간다. 국물 내는 비법이야 집집마다 다른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정성들여 여러 재료를 우려낸 국물로 끓인 연포탕이 더 맛있다. |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가 있었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11곳이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는데, 이런 사실이 그리 이슈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당장 먹고 살기 팍팍하고 눈앞에서 주가와 펀드가 곤두박질치는데, 습지 보전은 팔자 좋은,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니냐는 심정일 것이다. 세계엔 굶주리는 어린이들도 너무나 많은데, 환경 보전은 시급성과 중요성 면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런 시각들도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생태계’의 일원이다. 늪이나 소택지, 논, 호수, 하천, 양식장, 갯벌 같은 습지는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되어온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이며, 생명의 생산과 소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습지를 두고 ‘자연의 콩팥’이라 부르는 것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갯벌을 비롯한 습지를 좀 소홀히 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낙지를 먹을 때 한 번쯤은 갯벌, 더 흔히 쓰는 말로는 ‘뻘’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을 듯하다. 눈 앞의 삶이 어렵다고 눈 앞만 봐선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크고 멀리 보는 시각, 나뿐 아니라 전체 사회와 자연과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 가을낙지처럼 힘을 내서, 팍팍한 나날들을 견디고 이기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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