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산행

백두대간 3회차 산행기]마요리-유치재-사치재-시리봉-복성이재

그낭 그럿게 2010. 10. 15. 02:37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3회차]  
  매요리-유치재-사치재-시리봉-아막성-복성이재

     1. 일시 : 2010년 5월 29일(토)
     2. 날씨 : 맑음
     3. 참가자 : 거인산악회 백두대간 14기


     [산행개념도]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매요리에서 아영면 "복성이재"까지
     전라북도 장수군 번안면 유정리에서 논곡리 "복성이재"까지 
     접경지역 마루금을 걸어 갑니다
     도상거리 : 약 10.5km
     실산행거리 : 약13km
     
     [인삼랜드 휴게소] 10시 25분
      
     구름이 많이 낄거라는 구라청의 예보와는 달리, 맑은 하늘은 마치 가을 하늘 같았습니다.
     그러나 기온은 많이 올라 가 초여름의 날씨를 보이는 날이었으니 봄날은 가고 있나 봅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에 있는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남원으로 향했습니다.

     
     [매요리 마을회관 앞] 11시 10분
      
     고속도로는 순조로운 교통흐름을 보여 정체 없이 남원시 운봉읍 매요리 '마을회관' 앞에
     예정보다 다소 빠르게 도착했습니다.
     지난 2구간의 날머리였던 매요리에 다시 오니 그것도 구면이라고 벌써 친근감이 듭니다
     "매요리"는 원래 "마요리 馬腰里"였다는군요. 말의 허리를 닮아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사명대사가 이곳에 왔을 때,이 마을에서 매화의 꿋꿋한 정기가 감도는 것을 보고, 
     이 마을 사람들은 매화같이 선량할 것이니 지형과 인심에 맞게 "매요리 梅要里"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그 후부터 "매요리"로 부르게 되었다는군요.


     [기념사진]
      
     5월의 마지막 주말은 모두에게 바쁜 날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구간엔 참여한 산객들의 숫자가 조금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세상사 제쳐두고 이곳에 오신 분들은 분명 "산"을 즐기고, 사랑하고픈
     조금씩 산에 중독이 되가는 사람들....ㅎㅎ
     좋은 길 놔 두고 산삐알을 찾는 사람들...........


     ['매요리'에서 '사치재'까지 구글어스]
      
      1. 매요리(11시15분 출발)→(55분)→사치재(12시10분 도착)
          매요리에서 사치재까지는 비록 618m 높이의 "가산 佳山"을 오르기는 하지만
          운봉지역의 해발이 500m정도 됨으로 조그만 둔덕을 하나 넘는 정도로 편안한 길입니다

     
     [유치재] 11시 15분
      
     '매요리 마을회관' 앞에서 마을길을 따라 대간길을 갑니다만,
     실제 '대간 마루금'은 마을 뒤로 나 있습니다.
     하지만 통행이 어려워 편리하게 마을 포장도로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유치재 柳峙"
     "여암 산경준"선생의 "山經表"에 분명히 "柳峙"라고 표기되 있습니다.
     "버들 柳"이니 이곳에 梅花보다는 "버드나무"가 많았었나 봅니다.

     
     [19번국도와 舊24번국도 교차로]
      
     "19번 국도"는 전라북도 장수군과 통하는 도로이고,
     "舊24번 국도"는 남원시와 경상남도 함양군과 통하는 국도인데 이곳에서 교차하는 군요.
     사진 속에 보이는 목재가 있는 건물이 제재소이더군요. 
     제재소 옆으로 대간 마루금은 이어집니다.

     
     ['사치재'로 가는 대간 들머리] 11시 23분
      
     19번+舊24번 국도가 교차하는 곳에 있는 제재소 옆길로 올라 갑니다.
     이제부터 다시 산행을 시작하는데, 여기서 '사치재'까지 가는 이 산의 이름이 "가산 佳山"입니다.
     그리고 이 산의 앞 마을 이름은 "가산리 佳山里"이구요.
     이성계가 왜구를 무찌른 "황산대첩"의 황산 荒山"은 이 산과 붙어 동남쪽에 있더군요
     그런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와 이방원이는 사람들이 왜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지...
     아무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형제들을 죽이며 왕위에 올랐다 하더라도 "조선을 개국"한 이들인데..

     
     [가산리, 비전마을]
      
     '佳山'을 조금 올라 가면 남쪽으로 운봉의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산리 앞 마을은 "비전 마을"이라고 하는데 얼핏 들으면 영어의 vision을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영어 vision과는 전혀 관계없는 "비전마을"은 무척 유명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 옛날 이성계장군이 왜적 "아지발도"를 섬멸하여 그 공적을 기리는 "碑石"을
     세웠는데 그 碑石의 이름이 "황산대첩비"입니다.
     그 "'황산대첩비' 비석을 앞에 둔 마을"이라고 "비전 碑前"마을이라고 쓴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비전 碑前"마을을 소상하게 소개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 드림니다.

     
     [國樂의 聖地] 자료 사진
      
     우리가 가는 대간길 앞에 보이는 '운봉 비전마을'에는 우리나라의 전통 소리인 "판소리"를 꽃피워
     "가왕 歌王 "이라는 칭호를 받은 "송 흥록"일가의 생가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國樂의 聖地"를 이곳에 세웠답니다.
     얼마전 뉴스에서 "國樂의 聖地"를 찾은 사람이 금년에만 1만명을 넘어 섯다고 하더군요

 
     [國樂의 聖地 판소리 마당 - 야외 공연장]
      
     이 산행기를 읽으시는 분들은 우리나라의 "가왕 歌王"을 누구로 인정 하시겠습니까?
     이 미자?  나훈아?  조용필?  패티킴?  소녀시대? ㅎㅎ
     국가로 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는 했어도 벼슬은 못한 대중가수들입니다.
     그러나 가왕 歌王 "송흥록"은 '철종'시대에 '正三品 通政大夫'의 벼슬까지 받은
     그야말로 국가가 인정한 "가왕 歌王"이었으며 '판소리 동편제'의 창시자입니다.
     섬진강을 경계로 하여 그 동쪽, 즉 운봉을 모태로 하여 구례, 남원, 순창등지에서 성행한 
     판소리가 동편제인데, 가왕 歌王 "송흥록"이 발전시켜, "송만갑"이 완성시켰답니다
     판소리는 무궁무진 많이 있는게 아니고, 12 마당 뿐입니다.
     그 마저도 지금까지 전해져 불리워지는 판소리는 고작 다섯개 정도....
     '춘향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흥보가'입니다.
    '배비장타령','옹고집타령','강릉매화타령','무숙이타령','장끼타령','가짜신선타령','변강쇠타령'이
     더 있습니다만, 잘 불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변강쇠타령"만이 몇해 전에 돌아 가신 "명창 박동진"선생에 의해 완창된바 있습니다.

     
     [동편제 계보도]  
      
     그리고 "송만갑"의 수제자인 "명창 박초월"선생이 순창에 살다가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와 살았다고 '박초월'선생이 살았던 집도 복원해 놨더군요
     "명창 박초월"선생은 17살에 명창이 되고, 우리나라 초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 하시고, 
     국악의 세계화에도 앞장 서신 우리에게도 친숙하신 분이시죠. 83년도에 돌아 가셨습니다.
     박초월선생의 본명이 '박삼순'이라고 들었는데....예명을 "초월 初月"로 바꾸니 괜찬죠? ㅎㅎ

     
     ["618m봉-佳山"]
      
     판소리 "동편제"와 상대되는 개념으로의 소리로 '서편제'를 꼽습니다.
     "서편제"는 판소리의 또 다른 장르인데 주로 섬진강의 서쪽인 광주, 나주, 해남, 
     장흥등지에서 성행하여 '서편제'라는 이름이 생겨 났다고 합니다. 
     "서편제"는 고함을 지르며 통성, 철성으로 하는 "동편제"와 달리 애절하고 
     소리의 끝이 길게 늘어져 구성진 특징이 있지요.
     한마디로 비교 하자면 '동편제'는 음절을 딱 딱 끊으며 육자배기로 내지르는 소리 위주로
     '흥보가', '변강쇠가', '적벽가'등이 대표적 판소리이며, 
     "서편제"는 '춘향가','심청가'등 슬프고 애절한 대목의 판소리가 해당된다고 할수 있겠지요

     
     ["618m봉-佳山"에서 보이는 '88고속도로'와 '시리봉']
      
     佳山里의 뒷산인 "佳山"에 오르니 '88올림픽고속도로'가 보이며, 
     앞으로 가야할 대간길의 '시리봉'이 보입니다.

     
     [佳山의 숲길]
      
     판소리는 사실 "동편제"가 원류이랍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동편제"보다는 "서편제"가 더욱 더욱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판소리도 대중들에게 다가 가는 선율이 
     대중들의 기호에 맞게 변화 하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은 단연 "서편제"가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저는 "동편제"보다 "서편제"가 더욱 알려지게 된 동기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장흥이 낳은 한분의 소설가 - "이 청준선생" 
     광주일고와 서울대 독문과를 나온 수재이시며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큰 인물이십니다
     이분 아깝게 지지난 7월에 운명하셨습니다. 
     운명 소식은 뉴스에 무지 많이 나왔으며 특히 연예뉴스에 많이 나왔습니다
     그때 '소설가'가 죽었는데 영화배우등 '연예인'들의 문상이 끊임없었죠?
     그 이유는 제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서편제"와 무척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청준선생'이 쓴 소설이 어디 한두권이겠습니까만 제가 아는 소설은 "서편제"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더욱 유명해진 "서편제"입니다.
     판소리가 동편제, 서편제의 구분이 거의 없다가 "소설 서편제"와 "영화 서편제"가 힛트를 치면서
     판소리와 직접 관련없이 "서편제"라는 단어가 엄청나게 알려진게 아닌지....

               
               [사치재 이정표] 12시 7분
      
               "사치재" 이정표가 산중턱에 있어서 의아해 했는데
               아마도 "사치재"는 "88올림픽고속도로"때문에 명맥이 끊긴 상태이라
               고속도로 무단 횡단을 하지 못하도록 미리 우회로를 알려 주기 위해 있는듯

 
     [사치재로 내려 가는 급경사길]                     [88올림픽고속도로]
      
     소설 '서편제'와 영화 '서편제'를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저는 눈물이 납니다
     임권택 감독은 이청준선생의 "서편제"라는 소설을 영화로 오정혜라는 신출내기 국악인을 
     배우로도 성공시켰으며, 김명곤이라는 배우가 '우리나라 제8대 문화관광부 장관'이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이기도하죠
      
     "영화 서편제" 줄거리 잠깐 얘기 해 드릴까요? 다 보셨죠? 근데 잊어 버리셨죠? ㅎㅎ
     1960년대 초 천관산이 있는 전라남도 장흥과 보성 사이의 "보성 소릿재"에서
     누나와 아버지를 찾아 다니던 동호(김규철)는 주막 여주인(오정혜)의 판소리를 들으며 
     회상에 잠기면서 영화는 시작되었지요........... 
     마을 대갓집에서 소리품을 팔던 유봉(김명곤)은 동호(김규철)의 어미 금산댁을 만나 
     자신의 양딸 "송화"(오정해)와 함께 새 삶을 꾸리고 살아 가던 중에 
     금산댁이 아이를 낳다 둘 다 죽자 유봉(김명곤)은 아이들(동호와 송화)을 데리고 
     소리품을 팔며 이곳 저곳 이 마을 저마을을 떠돌아 다닙니다. 
     아버지 유봉(김명곤)이 아들 동호에게는 '북'을, 딸 송화에게는 '소리'를 가르치던 중 
     동호는 어려운 생활고와 아버지 유봉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가출합니다
     유봉은 아들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니, 딸인 송화도 자신을 버리고 떠날까 두려워
     송화가 영원히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아릿따운 송화의 눈을 멀게 하지요.
     이상한 한약을 먹여 이쁜 송화를 봉사로 만듭니다. 아무리 양아버지라도 어찌 이런 짓을....
     또한 눈이 멀면 이 아릿따운 소녀에게 얼마나 한이 서리겠습니까?
     봉사가 된 송화의 소리에서 한서린 통곡의 소리가 나오도록 하기 위해 서도
     그녀를 봉사로 만드는 아버지 유봉........... 
     저는 이 장면을 생각만해도 눈물이 납니다. 에휴~
     눈을 멀게 해서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한서린 통곡의 소리가 나오도록 하기 위한것이었기에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딸'송화'를 정성스레 간호하는 아버지 유봉, 
     그러나 그도 인간이기에 죄책감으로 죽어가며 송화에게 그 일을 사죄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아버지 유봉과 누나 송화를 찾아 헤매던 동호는 이름 없는 주막에서 '송화'를 만나지요. 
     누나 송화 임을 단번에 알아 보고, 송화에게 판소리를 청하는 동호, 
     송화는 아버지 유봉이 치던 똑같은 북장단을 치는 그가 동호임을 금새 알아 차리지만... 
     (흑흑..아이구 슬퍼라....)
     눈먼 송화는 벌써 희끗 희끗한 머리카락으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 가는데.....
     아 너무 슬퍼 더 이상 산행기를 쓸수가 없네요. 
     책 사서 읽던지 검색해서 영화를 보시던지 하세요
     이 대사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유봉이 눈먼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며... 
     "이년아! 가슴을 칼로 저미는 恨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뱁이여...! "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서편제"는 자꾸 생각납니다
     모두 너무나 슬픈 사연을 안고 살아 가는 한많은 여인들의 이야기라 더욱 가슴 저밉니다

     
     ['88올림픽고속도로'와 '지하통로']12시 10분
      
     매요리에서 55분 정도 걸려 옛"사치재"를 고속도로가 가로 막고 있는 "88올림픽고속도로"에
     내려와 우회로인 '지하 통로'로 향합니다.

 
     [지하통로]
      
     고속도로 지하 水路를 통해 고속도로를 통과 합니다.
     대간꾼들은 "물"을 건너지 않는데....살려면  어쩔수 없이 ...ㅎㅎ

     
     [점심식사] 약30분간
      
     "사치재"에서 점식사를 합니다.
     "사치재"는 한자로 "모래 沙", 고개 峙"를 쓰더군요. 우리 말로 "모래재"이지요
     그러므로 이 고개에는 모래가 많았던 곳인가 봅니다만 지금은 고속도로 포장도로입니다.


     ['사치재'에서 '시리봉'까지 구글어스]
      
     2, 사치재(12시40분 출발)→(1시간 45분)→시리봉 헬기장(2시 25분)
        오늘 산행에서는 가장 힘든 구간입니다.
        그러니 오늘 산행구간이 얼마나 짧고 쉬운지 이해가 가나요?

     
     ['사치재'에서 "620m봉-헬기장" 들머리] 12시 42분
      
     약30분간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620m봉", "693m봉"을 치고 오릅니다.

     
     ["620m봉-헬기장" 오르는 길]
      
     "620m봉- 헬기장"으로 오르는 登路에는 죽은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지리산이나 한라산등 高山地帶에 가면 "고사목 古死木"이 많지요?
     살아서 백년, 죽어서도 백년 동안 아름답다는 古死木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죽은 나무는 古死木이 아니고, 산불로 인해 불에 타 죽은 "火死木"이더군요

     
     [88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와 "지리산 천왕봉"]
      
     "인월 引月"
     고려 말, 금강 어귀로 침범했던 왜구들이 퇴로가 막혀 이곳으로 숨어 들었답니다.
     아스팔트와 발음이 비슷한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차 바다로 
     달아나려 하였습니다. 고려 군은 이성계를 최고지휘관으로 삼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답니다. 
     이성계가 먼저 활을 쏘아 '아지발도'의 투구를 떨어트리고,
     뒤이어 아랫 장수 이두란(李豆蘭)이 쏜 화살이 그의 머리를 맞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전투를 하면서 시간이 오래 걸려 해가 지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이성계가 지리산 산신령에게 기도를 하여 아직 뜨지도 않은 달을 끌어 올려
     훤한 달밤을 만들어 왜구들을 끝까지 몰살시켰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ㅎㅎ
     "달을 끌어 올렸다""인월 引月"이라는 地名이 생겼다고...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지고....勝者는 美化되고....敗者는 두번 죽고...

     
     ["620m봉-헬기장"정상] 12시 56분
      
     제법 가파른 620m봉을 15분 정도 오르니 바로 정상 헬기장이었습니다.
     단순한 헬기장이었지만 날씨가 좋아 조망 장소로는 아주 좋았습니다.
     지금부터 "620m봉"에서 주변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620m봉-헬기장"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래봉"]
      
     우선 동남쪽으로는 철죽으로 유명하고, '지리산 태극종주' 출발점으로도 유명한 
     "바래봉"이 조망됩니다.
      우측 바로 앞봉우리가 지나온 "佳山"이고, 좌측 중간에 있는 나즈막한 산이 "황산"입니다.

     
     ["620m봉-헬기장"정상에서 바라보는 "노치마을"]
      
     그리고 남쪽으로는 '운봉 읍내'와 2구간의 "노치마을" "수정봉"이 보입니다.

     
     ["620m봉-헬기장"정상에서 바라보는 "수정봉-여원재-고남산"]
      
     서남쪽으로는 지난 2구간 대간길이 더욱 멋지게 조망됩니다.

     
     ['시리봉'으로 가는 대간길]
      
     얼마전 입적하신 무소유로 더욱 유명하신 "법정스님"이 산에 대해 쓴 글이 있습니다
     '무소유'의 법정스님'은 산을 어떻게 표현했을까?라고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산을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에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693m봉] 1시 18분
      
     "620m봉-헬기장"에서 조금 가면 "693m봉"이 나옵니다.
     이번 코스에서 이 봉우리 오르는 길이 유일하게 암릉길이었습니다.

     
     [새목이재] 1시 38분
      
     남원시 인월면과 아영면에서 장수군으로 넘어 가는 옛고갯길입니다.
     이곳의 지형은 구글어스를 보면 확연합니다.

     
     ['시리봉'으로 가는 길]
      
     오늘 구라청의 예보와 달리 날씨가 무척 더웠습니다.
     '시리봉' 오르는 된비알에 땀좀 흘렸지요 ㅎㅎ

     
     ['시리봉' 옆 헬기장] 2시 25분
      
     "시리봉 776.8m봉"은 대간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이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를 '시리봉'으로 간주하고 지나 갑니다.
     '매요리'에서 이곳까지 3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복성이재"까지는 앞으로 1시간 25분 정도 걸리니 오늘 산행은 아주 짧습니다.


     ['시리봉'에서 '복성이재'까지 구글어스]
      
     3. 시리봉 헬기장(2시 25분)→(1시간25분)→복성이재(3시 50분)
         아막성을 지나 복성이재로 가는 길은 전체적으로 내리막 길로서 편합니다.
         '남근석', '아막성'들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습니다

     
     [남원시 아영면 정경]
      
     판소리 "흥보가"에서 흥보가 제비를 살려주고 얻은 박씨로 대박을 터트리는....
     요즘 말로 LOTTO에 당첨되는 "발복지 發福地"라는 전설을 사실인듯 현실화 하고 있는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의 정경입니다.
     척박한 첩첩산중인 이곳이 發福地라고 하고....
     재산도 없어 자식 키울 능력도 없는 흥보가 애들은 무지 많이 낳아 거지 소리를 듣는데도...
     열심히 일하지는 않고  형한테 가서 구걸이나 하며 사는데도.....
     결국은 인생역전 때부자가 되는 해피엔딩을 만드는 판소리 "흥보가"는
     판소리가 서민 백성들을 상대로 하기에, 가난한 서민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즐겁게 해주기 위해 
     만들어 낸 서민들의 노래라 할수 있겠습니다.

     
     [父子 사랑이 넘치는 리본]
      
     1구간 최연소 대간 참가자인 이주형군의 아빠는 아들과 함께하는 대간길을 기념하며
     추억의 길로 만들고 있습니다. 
     남다른 父子愛.....
     끝까지 함께해서 완주의 기쁨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배경 음악으로 "아빠, 바람의 색깔은 어떤 색이에요?"라는 노래를 깔았습니다.
     앞 못보는 아들과 대자연 속에서 함께 가는 아빠가 서로를 위하는 내용의 노래 랍니다
     바람은 '푸른 색', 사랑은 '황금색'이라고 아빠는 일러 주지요...

     
     [결의를 다지는 사람들]
      
     저의 산행기는 많은 사람들이 보며 산행참고로 하는 것이기도해서 개인사진은 잘 올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별하신 분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산행도 결국은 사람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멋있는 분들이죠?

     
     ['시리봉'에서 '아막성' 가는 길]
      
     아!~ 아깝다
     철죽은 지고.....
     지난주에만 왔어도 철죽 터널을 지나 가는건데....
     아주 게으른 철죽들만 이제서야 꽃을 피우며 가끔 보이는군요.

     
     [남원시 아영면 "흥부마을"]
      
     얼마전 작고하신 명창 '박 동진'선생 기억 하십니까?
     "우리 것이 좋은 것이어~!"라고 TV 광고에도 자주 나오셨죠?
     몇해전 작고 하셨지만, "흥보가"를 비롯해 "변강쇠가"등 동편제를 많이 완창하셨지요.
     최초로 "변강쇠가"를 완창하신 걸로도 유면하십니다
     그런데 이 "흥부마을" 바로 옆, 함양 마천에는 "변강쇠"와 "옹녀"가 정착해 살았던 마을이 있죠
     모두 "판소리 동편제"가 만들어진 고장인데, 실제 운봉과 함양은 옛날엔 같은 신라 였답니다.
     사람들의 어투, 사투리에서도 운봉, 아영, 인월 사람들은 "추워, 더워"라고 하지 않고,
     경상도 사투리인 "추버, 더버"라고 합니다. 실제 경상도인 셈이지요
     그래서 "동편제"는 경상도식 판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욱박지르며 딱딱 끊으며 부르는 소리가 경상도 스타일이고,
     애절하고 간드러지는 창법이 전라도 스타일이라는거죠

     
     [男根石]
      
     '시리봉'에서 '아막성'으로 가는 길섶에 소위 "男根石"이라는 바위가 하나 덩그러니...
     요즘은 불임을 위해 콘돔을 끼고 있는듯하네요 ㅎㅎ 아주 야한 콘돔....
     요즘 애기 낳으면 국가에서 돈도 주는데...시대를 역행하시나?
     "변강쇠" "옹녀"를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주로 에로영화를 떠올리며, 
     특히 '이대근'과 '원미경'이 주연한 영화 "변강쇠"가 먼저 생각나시죠?
     그리고 막연하게 정력이 무지하게 쎄고, 쌕스를 무지 좋아하는 남녀로 생각 할것입니다.
     그러나 "변강쇠"는 우리나라 전래음담설화로 오랜 옛날부터 전해 오는 "판소리"입니다
     천하의 음남(淫男)과 음녀(淫女)의 육욕(肉慾) 탐닉(眈溺)의 대명사인
     '변강쇠'와 '옹녀'가 개성에서 만나 한바탕 천지가 진동하게 떡을 치고 肉慾眈溺하다가.....
     그 이후 깨달은바 있어 인간답게 살자고 조용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찾아 간곳이 
     바로 이곳 비로 옆, "함양 咸陽 마천"이기 때문입니다
     변강쇠와 옹녀가 개성 청석골에서 처음 만나 '청석대'라는 바위 위에서
     정사를 하는 장면을 판소리의 원문으로 알려 드릴까요? ㅎㅎ
           
     둘이 손길 마주 잡고 바위 위에 올라가서 대사(大事)를 지내는데, 
     신랑 신부 두 년놈이 이력(履歷)이 찬 것이라 이런 야단(惹端) 없겠구나. 
     멀끔한 대낮에 년놈이 홀딱 벗고 매사니 뽄 장난할 때, 
     천생음골(天生陰骨) 강쇠놈이 여인의 양각(陽刻) 번쩍 들고 옥문관(玉門關)을 굽어보며,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소나기를 맞았던지 언덕 깊게 패였다. 콩밭 팥밭 지났는지 돔부꽃이 비치였다. 
     도끼날을 맞았든지 금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生水處) 옥답(沃畓)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옴질옴질 하고 있노. 
     천리행룡(千里行龍)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神通)하다.
     만경창파(萬頃蒼波) 조개인지 혀를 삐쭘 빼였으며 
     임실(任實) 곶감 먹었는지 곶감씨가 장물(臟物)이요, 
     만첩산중(萬疊山中)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연계탕(軟鷄湯)을 먹었는지 닭의 벼슬 비치였다. 
     파명당(破明堂)을 하였는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제 무엇이 즐거워서 반쯤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연계 있고, 제사상은 걱정 없다." 
           
     ㅎㅎ 옹녀의 거시기 玉門關이 어떻게 생겼는지 변강쇠가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있죠? ㅎㅎ

     
     [阿幕城]
      
     "男根石"을 지나면 城터가 나오는데 "阿幕城"이라고 한답니다.
     옹녀는 변강쇠가 자신의 거시시 玉門關을 보고 묘하게 표현하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옹녀는 미소를 지으며 앙갚음을 하려고, 변강쇠의 거시기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이도 생겼네. 
     전배사령(前陪使令) 서려는지 쌍걸낭을 느직하게 달고, 
     오군문(五軍門) 군뇌(軍牢)던가 복덕이를 붉게 쓰고 
     냇물가에 물방안지 떨구덩 떨구덩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털고삐를 둘렀구나. 
     감기를 얻었던지 맑은 코는 무슨 일인고. 
     성정(性情)도 혹독(酷毒)하다 화 곧 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일는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사에 쓴 숭어인지 꼬챙이 구멍이 그저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린다. 
     소년인사 다 배웠다,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대인지 검붉기는 무슨 일인고. 
     칠팔월 알밤인지 두 쪽이 한데 붙어 있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삐, 걸낭 등물 세간살이 걱정 없네." 
           
     옹녀와 강쇠가 서로의 성기를 보며 절묘한 표현을 하고는
     하루 종일 서로 업어 가며 정사를 벌입니다. ㅎㅎ

     
     [阿幕城의 흔적들] 3시 7분
      
     누군가가 이게 阿幕城이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그냥 돌탑인줄 알고 지나 칩니다.
     천오백여년전의 城인데도 흔적이 뚜렸합니다.
     한자 풀이를 해 보면 "언덕 阿"에 "가리울 幕"이니 山城으로 부르지 않고 阿幕城이라 한듯

     
     [阿幕城에서 뒤 돌아 본 "시리봉"]
      
     이곳에 와 뒤돌아 보니 이제서야 "시리봉"의 모양을 알수 있습니다.

               
               [阿幕城 안내]
      
               내용은 사진 속의 글을 참고 하세요 (아무도 읽지 않지요? ㅎㅎ)
               그냥 그런 내용...

     
     [阿幕城에서 바라보는 "봉화산"]
      
     다음 구간에 갈 "봉화산"이 멀리 조망됩니다.
     봉화산에 가면 경상도와 전라도의 道界를 만나 가는 백두대간이 이어집니다.

     
     [阿幕城에서 바라보는 "복성이재"]
      
     "복성이재"
     고개 이름으로는 다소 특이합니다.
     한자로 풀이를 하면 간단하게 의문이 해결됩니다
     "점卜, 별 星" "별을 보고 점을 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전쟁이 잦았던 옛날에는 점을 치며 전쟁의 전술을 계획하고 싸웠다고하지요?
     '복성이재'를 지나 가는 대간 마루금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阿幕城 城壁을 지나 '복성이재' 가는 길] ★길 주의★
      
     阿幕城에서 '복성이재 卜星峙"로 가는 길은 무너진 阿幕城 城壁을 지나 내려 가야합니다.
     무너진 城壁의 바위들로 길이 잘 보이지 않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임도 - 흥부마을 가는 길] 3시 32분
      
     "복성이뒷재"라고 생각되는데 지도상에 나와 있는 "복성이 뒷재"와는 많이 다릅니다.
     지도에 표기된 "복성이뒷재"는 "남근석"과 "아막성" 사이에 있습니다.

     
     [임도 이정표]
      
     "흥부마을"로 가는 길.......

     
     [남원시 아영면 성리]
      
     "흥부마을"-판소리 흥보가의 발상지라고 스스로 자랑하고있는 성리 마을.
     이곳에는 "흥보가"에 나오는 地名이 실제로 있다고 합니다.
     판소리의 창시자인 송흥록의 고향이 가까운 이웃인 비전마을이니 충분히 믿을 수 있을듯 합니다.
     '흥보전'에 나오는 유명한 地名중에 실제 이곳에 있는 몇개 지명을 간추려 소개 하면.....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라고 전해진답니다.
     "고둔터"는 고승이 가난에 시달 리고 있는 흥부에게 잡아 준 명당으로, 
     흥부는 이곳에서 제비를 고쳐주고 보답으로 박씨를 받아 대박 터지는 인생역전의 터전이 되는
     발복(發福) 집터라는 뜻이랍니다. 
     실제 "고둔"이라는 지명은 곳집(창고)이 모이는 터, 즉 부자가 되는 터라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사금모퉁이"라고 있는데 사금꾼들이 금을 채취하던 곳으로, 
     흥부가 이곳에서 사금 沙金을 주워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답니다.
     박씨를 택할래요? 沙金을 택하시겠습니까?
     봉화산과 멀리 백운산이 조망됩니다.
     6월에 갈 대간입니다

     
     [임도]3시 42분
      
     다시 임도를 하나 만나고...

     
     [복성이재]3시50분
      
     "卜星峙"에 도착했습니다.
     "짖제고개"라고도 하는가 봅니다.

 
     ['복성이재' 이정표]
      
     "751번 지방도"가 지나며, 
     남원시 아영면에서 장수군 번암면으로 넘어 가는 고개입니다.
     총산행시간 : 4시간 35분

     
     [흥부마을 안내판]
      
     거인산악회 14기 여러분
     흥부처럼 대박 터지는 일들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대간길을 열심히 가면 무척 건강해 지실거고, 건강이야 말로 최고의 대박 아니겠습니까?

     
     ["복성이재" 뒷풀이]
      
     아이디 "클레오파트라"라는 여성분이 뒷풀이를 책임지셨답니다.
     감사드림니다. 다음 번 부터는 서로 뒷풀이를 책임 지겠다는 분들이 많아서 기분 좋습니다.
     "클레오"님은 경황이 없어 사진 촬영을 못해 이번엔 소개해 드리지 못하지만 다음에 상세히....

     
     ["양재지맥" 뒷풀이]
      
     오늘은 짧은 산행으로 서울에 매우 일찍 도착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기회가 자주 올것같지 않아 "양재지맥"으로 가 한잔 더 했습니다.

                 천국은 연인끼리 가는거구
                 지옥은 친구랑 가는거래요
                 친구는 모든 어려움도 함께 할 수 있기에....
                 백두대간은?
                 거인산악회 嶽友 14기와 함께 가는거구요~ 
                                -파란문-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What Colour Is The Wind / Charlie Landsbor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