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산행

[백두대간 첫구간]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고기리

그낭 그럿게 2010. 10. 15. 02:43
             
백두대간 첫구간 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고기리 1. 일시 : 2010년 5월 8일 (토) 2. 날씨 : 맑고 약간의 바람이 있는 좋은 날씨 3. 주최 : 거인산악회 4. 참여인원 : 70여명 [1구간 개념도] "백두대간 첫구간"은 크게 두 구간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1. 성삼재-(30분)-고리봉-(1시간50분)-만복대-(1시간10분)-정령치 12시40분 1시 10분 3시 4시10분 2. 정령치-(30분)-큰고리봉-(1시간30분)-고기리 4시10분 4시40분 6시10분 3. 총산행 거리 : 11.1km 4,총산행시간 : 6시간 30분 [양재역 1번출구 수협앞] 오전 7시 '어버이 날'인 5월8일(토) 이른 아침 7시 양재역 1번 출구 '수협앞' '어버이 날'이면 어버이 다웁게 가족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가꾸는데 정성을 쏟아야 하는데 가족들 내 팽개치고 오로지 자신의 '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제법 많이 모여 들었습니다. ㅎ 참가 인원이 많아 버스 두대로 출발합니다. 저는 2호차에 탓습니다.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성삼재"] 오후 12시 30분 오늘은 주말이며 '어버이 날'인 관계로 경부고속도로는 혼잡할수 밖에 없었는데, 설상가상 오산 부근에서 교통사고까지 있어, 6시간 15분이 걸려 지리산 "성삼재"에 도착했습니다.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넘어 가는 큰 고개인 "성삼재"는 '백두대간 종주'의 시발점이기도 해서 엄습하는 감회는 자못 전쟁터로 가는 듯 상기되기도 했습니다. ["성삼재" 휴게소] '성삼재'는 智異山 主稜線 등산코스의 주요관문이기도 합니다. 성삼재는 해발 1,090m에 있기 때문에 지리산을 오를때 가장 가깝고 쉬운 '산행 들머리'가 됩니다 아무리 초보 산객도 오를수 있는 곳이기에 많은 관광객들과 함께 북적대는 곳이라 휴게소도 큽니다 ["성삼재" 휴게소 주차장] 성삼재 휴게소에서 南쪽으로 보이는 "노고단 老姑壇(1,507m)"이 지척인것처럼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만, 우리는 이제부터 北으로 北으로 전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조만간 1박2일로 천왕봉에서 저기 보이는 '노고단'을 거쳐 이곳 '성삼재'까지 종주를 해야 합니다. [단체기념사진] '거인산악회'가 주관하는 "백두대간 종주"에 많은 산객들이 참가했습니다. 이번 '14기 종주팀'은 "당일 산행"을 원칙으로 하고 약간의 무박을 곁들이는 산행으로, 그렇게 힘들지 않아 초보 산객들도 참여 할수 있는 기회이기에 많은 산객들이 모인듯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무박으로 가는 백두대간은 저도 경험 한바 있습니다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깜깜한 밤중에 상당 시간 걷고 또 걸어 하루에 20~30km를 가는 것이기에 그 또한 의미는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오로지 "종주"의 의미와 "체력적 과시"의 의미가 뒤따를 뿐, 결국 밤중에 걷는 것은 눈에 보이는게 없으니 백두대간이 뒷동산과 다름없고, 또한 관절염등 부상의 위험이 엄청나게 따르더군요 ....... "자연 속으로의 여행-즐거운 산행"의 의미는 당연히 없을 것이고, 또한 이왕 가는 우리 국토의 뼈대인 白頭大幹을 깊이 있게 느끼며 공부하며 갈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은 나름대로 여러 의미를 부여 할수 있다고 느끼며 특히 백두대간을 한번 종주는 하고 싶었으나 체력적 두려움으로 미적거렸던 산객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수 없었을 것입니다. [구례군 산동면 당동마을] '성삼재'에서 서쪽을 내려다 보니 "지리산콘도"등 유락시설들이 있는 "전남 구례 당동마을"이 보입니다 해발 1,090m인 백두대간의 '성삼재'가 어느 위치인지 가늠하게 합니다. ['성삼재'에서 '만복대'까지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어스를 활용합니다. 앞으로 우리들의 산행 괘적은 인공위성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알기 쉽게 제공 됩니다. 경남 함양에서 전남 구례로 넘어 가는 "861번 지방도"가 선명한 '성삼재'에서 뻗어 가는 백두대간이 인상적입니다. [백두대간 산행 들머리] 12시 40분 '성삼재 휴게소'에서 "861번 지방도" 함양방향으로 조금 내려 가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백두대간 들머리"가 좌측으로 나 있습니다. [산행 들머리 이정표] "만복대 5.3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앞으로 2년 이상 격주로 걸어야 할 백두대간의 출발을 알리며 환영한다는 현수막처럼 보입니다. 철죽까지 피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하지만 첫발을 힘있게 내디딤니다. [뒤돌아 본 산행 들머리와 '성삼재'] 성삼재에서 고리봉으로 가는 둔덕을 올라 뒤 돌아 보니 백두대간 산줄기와 "성삼재"의 모습이 한눈에 잘 들어 옵니다. '지리산 智異山"의 옛 이름은 "두류산 頭流山"이었습니다. 물론 그외에도 여러 이름이 있었습니다만 거의 최근인 조선 말까지도 "두류산 頭流山"으로 불리워져 왔습니다. "頭流山"이라는 글자에서 보는바와 같이 白"頭"山이 흘러"流"와 자리 잡은 것이 "頭流山"이니, 백두대간의 처음과 끝인 것입니다. [헬기장] 12시 46분 마루금을 올라 타 둔덕 하나를 넘으니 '헬기장'이 나왔으며, 가야 할 "고리峰"이 보입니다 첫구간은 한봉우리를 오르면 다음에 가야할 봉우리가 훤히 보여 예측 가능하기에 매우 편안합니다 가도 가도 어디가 어디인지 보이지 않는 곳은 심리적으로 무척 부담이 가지요? 백두대간은 대체로 예측 가능하기에 다른 '정맥 正脈'이나 '지맥 枝脈'보다 심리적 부담이 적습니다 그런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두대간"에 더 심리적 부담을 갖는듯 합니다. "백두대간이라고 다른 유명산과 특별히 다른것은 없다"고 산행대장인 김대장이 얘기한바와 같이 당일 산행일 경우 부담을 더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北進하자구요~! ['고리봉' 오르는 길] "지리산 智異山"은 삼국시대 이전의 삼국시대인 "진한, 마한, 변한"시대부터 각축장이었답니다 서로 남이 일궈놓은 땅을 무력으로 빼앗아 자기 땅을 만들려고 했던 치졸한 우리 선조들이 경멸스럽습니다. 전쟁 할 힘으로 있는 자기 땅이나 잘 개간해서 농경지를 늘려 열심히 노력 해 잘 먹고 잘 살려고 하지 않고 깡패 집단처럼 힘으로 뺏어 살려고 했던 선조들. 물론 너무 척박한 땅에서 살던 선조들이 주로 침략을 했겠지만 화해와 협력으로 살지 않고 끊임없이 싸워 점령만 하려고 한것이 경멸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런것들은 수천년이 흐른 지금도 진행형이지요..... ['고리봉' 오르는 길] "진한, 마한, 변한"시대에서 부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 지역 地名이 생겼다고 하는데...... 옛날 아주 옛날, 진한의 왕은 성삼재 아래 계곡에 있는 "달궁 宮"을 방어하기 위해 서쪽 10리 밖의 嶺에 鄭氏 姓을 가진 장군을 배치 한곳이 "정령치, 鄭嶺峙"이고, 동쪽 20리 밖의 嶺마루에 黃씨 姓을 가진 장군을 파견 한곳이 "황령치, 黃嶺峙"이며, 남쪽 20리 밖의 山嶺에는 姓이 각기 다른 3명의 장군을 보낸 곳이 "성삼재, 姓三재"였다고 합니다. 또한, 북쪽 30리 밖의 높은 산령에는 8명의 젊은 장군"팔랑치, 八郞峙"에 배치해 외적의 침공을 막아냈다고 하여 각각 "정령치, 황령치, 성삼재 , 팔랑치"등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서산대사"가 쓴 글에 나와 있습니다 [고리봉 정상] 1시 10분 '성삼재'에서 약40분 만에 "고리峰"에 오릅니다. 이곳 "고리봉"은 "정령치" 뒤에 있는 "고리봉"과 구별하기 위해 "작은 고리봉"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고리峰"은 한자로 "環峰"이라고 하는데 "고리 環"이니 같은 뜻이지요 아주 옛날에는 남해 바다 하동에서부터 섬진강을 따라 거슬러 '전라북도 남원'의 '오수정'까지 배들이 오르내렸다고 합니다. 오르 내리던 배들을 묶어 놓았던 "고리"가 이 산의 어딘가에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인가 봅니다. 전설적인 이야기이니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고리봉 정상석] 해발 1,248m - 배를 묶어 두는 '고리'가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의 "고리봉" 전설을 얼마나 믿느냐 하는건 순전히 자신의 몫입니다만...제가 예를 하나 들까요 남극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붙어 있던 땅덩어리가 떨어져 아시아 대륙으로 흘러와 헤딩하며 부닥친 땅덩어리가 '인도'이고, 아시아 대륙과 충돌할때 솟아 오른 산맥이 '히말라야 산맥'이며, 8,000m가 넘는 산들로 이루어진 히말라야가 옛날엔 진짜로 바다 바닥이였다는 것은 현대 과학으로 모두 입증된 것이니 "고리봉", "큰고리봉"등의 전설이 결코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리라......ㅎ 전설을 너무 허무맹랑한 것으로만 생각하면 않된다는 주장입니다. ㅎㅎ 믿거나 말거나...그래도 믿어 주세요 ['고리봉 정상'에서 뒤 돌아 본 "성삼재"] 우선 사진의 좌측 맨끝 위에 있는 "노고단 老姑壇"이 눈에 훤히 들어 옵니다. "노고단 老姑壇"은 天神의 딸인 마고할미가 살고 있었는데 지리산 어느 구석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 盤若"를 만나서 결혼한 뒤 천왕봉에 살았답니다. '마고할미'는 슬하에 여덟 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 뒤 '반야'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바람이 난 것은 아니겠지요?ㅎㅎ)처와 딸들을 뒤로 하고 "반야봉盤若峰"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마고할미'는 백발이 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남편 '반야'를 기다리며 나무껍질을 벗겨서 道닦으러 갔는지 바람 나 줄행랑 쳤는지 모르는 남편 '반야'를 위해 '반야'의 옷을 지었답니다. 그리고 딸들을 한명 씩 전국 팔도로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리다 나중에 지쳐 버렸답니다. 성질 무지무지 난 마고할멈. "개쌔이!~ 딸 여덟명씩이나 낳을 정도로 좋을 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붙어 있더니 단물 쓴물 다 빨아 먹고 이제는 맛없다고 줄행랑 쳐서 나몰라라 하고 오지도 않아? 개쌔이~" 그럴만도 하겠지요? 아마 여러분들도 같은 처지였다면 성질 날겁니다. ㅎㅎ 그 후 그래서 마고할멈은 남편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에 숨을 거두고 만답니다. 이때 갈기갈기 찢겨진 옷은 바람에 날려서 '반야봉'으로 날아가 풍란이 되었다고 하네요 제가 쬐끔 각색을 해서 들려드리는데 잼있나요? ㅎㅎ ['고리봉 정상'에서 뒤 돌아 본 "백두대간"] 이곳은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사진을 확대해서 "백두대간"을 설명드림니다. 사실 '백두대간'의 북진 출발점은 "지리산 천왕봉 天王峰"입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을 지나 "코재", "종석대"를 거쳐 "성삼재"로 와 이곳 "고리봉'을 거쳐 '백두산'으로 갑니다. 그런데 왜? 첫구간이 "천왕봉"이 아닌 "성삼재"인지 의아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智異山 主稜線의 거리가 일백리, 약45km"나 됩니다.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 구간은 하룻밤을 대피소에서 자거나, 2박3일 또는 1박 2일 비박을 하며 진군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코스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다음에 여가 날때 별도로 대피소를 예약하여 제각각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홍어와 무인도팀"은 여름에 날 잡아 함께 종주 할 예정입니다. ['고리봉 정상'에서 바라 본 가야할 "만복대"] '고리봉 정상'에서 앞으로 가야할 "만복대 萬福臺"가 아름답게 조망됩니다. '고리봉'에서 '만복대'까지 대간 마루금에는 철죽과 억새, 산죽들과 희귀 식물들이 자생하고 많은 동물들도 그들의 왕국을 만들며 살아 가고 있답니다. ['고리봉' 헬기장 - 점심식사] 1시 20분 '고리봉' 바로 아래에는 헬기장이 있어 여기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고속도로 교통 정체로 너무 늦게 도착하여 여러모로 불편했습니다 서울에서 보통 아무리 천천히 온다고 해도 4시간반이면 오는데 오늘은 무려 6시간반이 걸렸으니.. ['만복대' 가는 길] 지리산에는 아직도 겨울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진달래, 철죽, 버들강아지 등등은 아직도 눈을 감고 봄을 기다리고 있으며 아주 가끔 성질 급한 들꽃들이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금년엔 봄이 천천히도 오고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앙상한 철죽나무가 활~짜악 만발할때 그 장관은 상상만 해야 합니다. [만복대] 2시 15분 쬐끔만 더 따뜻해지면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려고 하는 철죽들이 굳게 입을 다물고 놈들의 동태만 살피고 있는 "만복대" 가는 마루금--- 한적한듯 육중한듯 따뜻한듯 냉정한듯 산객들을 껴안고 있습니다 ['만복대'로 가는 길에서 뒤돌아본 '고리봉'] '만복대'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지나온 고리봉과 저 멀리 "노고단"이 이별을 아쉬워 하는듯 눈물만 흘리며 눈을 껌벅거리며 한숨 지어며 누워 있는듯합니다. [萬福臺 登路] 聖地를 巡禮하는 巡禮客들이 祭壇을 향해 오르는 듯 萬福臺로 가는 登路가 골고다의 길처럼 하늘로 치솟고 있습니다. 장관입니다. 萬福臺에 오르면 그야말로 萬福이 덩쿨채로 굴러 들어 올것 같습니다. 그래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올라 갑니다. [만복대까지 300m] 2시 54분 휴~ 이제 萬福臺 정상까지 300m 남았군요. '성삼재'에서 약 2시간 10분 정도 걸려 여기까지 5km를 왔으니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못 걸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면 어떡하나~라고 걱정하던 모든 회원님들이 씩씩하게 잘도 걷는 모습을 보니 이때까지 얼마나 엄살을 떨었나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만복대' 오르는 길] 고려 명종 때에 좌간의대부까지 오른 "이인로 李仁老"선생이, 고려 말 무신정권 '정중부의 란'때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두류산으로 들어와 은거하며 살다가 환속하기도 했는데, 그 때 두류산(지리산)에 대해 읊은 詩 한수 들려 드리겠습니다. 두류산이 깊어 저녁구름 나직한데 / 頭流山逈暮雲低 수 많은 계곡과 암봉들이 회계(중국 절강성 일대)와 비슷해라 / 萬壑千巖似會稽 막대를 짚고 청학동(지리산에 있는 신천지)을 찾으려는데 / 策杖欲尋靑鶴洞 건너편 수풀에 흰 원숭이의 울음이 들리네 / 隔林空聽白猿啼 누대는 아득한데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은 멀고 / 樓臺縹渺三山遠 이끼낀 넉자 글씨 아직도 희미하네 / 苔蘚依俙四字題 도원이 어디냐 물어 보렸더니 / 始問仙源何處是 낙화만 흘러 내리어 어딘지 모르겠네 / 落花流水使人迷 [만복대 바윗길] 7,500만년의 풍상을 모두 격고 이젠 완전히 늙어, 암봉들은 흙으로 변해 철저히 肉山인 지리산에도 가끔은 안간 힘을 쏟으며 살아 있는 바위들이 주름살을 잔뜩 찌푸리며 있습니다 만복대 바로 밑에도 정상을 오르는 關門처럼 큰바위들이 움집해 있습니다. [萬福臺 정상] 3시 '성삼재 들머리'에서 점심식사시간을 합쳐 2시간 20분이 걸려 드디어 "萬福臺"정상에 오릅니다. 5.3km를 제법 빠른 속도로 오른것입니다. 초보산객이라고 엄살을 떨며 몸을 사리던 "백두 14기 회원님들"이 모두 한시간에 약2.5km 속도로 "萬福臺"에 올랐으니 비교적 빠른 편입니다. 모두 쎈 사람들인데 너무 겸손을 떨었던것 같습니다. ㅎㅎ [만복대 정상석과 이정표] 높이 1,438.4m 그 명성에 비해서는 정상석이 조금 초라해 보입니다. 이정표 뒤로 펼쳐지는 "정령치"로 가는 대간 마루금이 선명합니다. [萬福臺 정상] 智異山 - 그 똑똑함이 남다르다고 智異山이라고도 한다는데 萬福臺는 智異山이 갖고 있는 모든 福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고 萬福臺라 이름 지어 졌다는 것이니 이곳에 서서 智異山을 바라 보지 않고는 智異山의 아름다움을 볼수 없어 불행할수 있으니 萬福臺는 꼭 올라 "智異山 主稜線"을 감상해야 하는 지리산의 대표 봉우리입니다. ['萬福臺 정상'에서 바라 본 "반야봉"] "반야봉 盤若峰" 앞에서 "노고단 老姑壇"을 설명 할때 언급 한바와 같이 "노고할미"와 결혼해서 딸을 여덟명이나 낳고, 핑개인지 사실인지 몰라도 더 道를 닦아야 겠다고 天王峰에서 도망가 살며 道를 닦았다는 산봉우리가 저 "반야봉 盤若峰"입니다. 그 옛날 저 봉우리에 바람피러 오는 다른 여자들은 없었을 테니 道를 닦으러 갔다고 인정해 주어야 겠지만, 사랑엔 국경도 인정 사정도 없다니 어떤 사랑에 목마른 여자가 올라 갔는지도 모릅니다. 또는 "盤若"는 아직도 그곳에서 道를 닦는다는 핑개로 요즘 수없이 오르고 있는 여성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ㅎㅎ 제가 지어낸 이 이야기를 읽고 '盤若"에게 성폭행 당할것을 우려해 이제부터는 여성들이 저 盤若峰에 올라 가지 않을까요? 아니면 일부러 올라 가는 여인들이 더 많아질까요? ㅎㅎ 후세 사람들은 '盤若"가 佛道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으로 불렀으며, "노고할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딸들은 八道로 내려가 "八道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고.. 그 후 사람들은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것은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서로 상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한다는 그런 믿거나 말거나 하는 전설이 전해 지고 있습니다. ㅎㅎ ['만복대'에서 '정령치'까지 구글어스] 다시 "만복대"에서 "정령치"까지 구글어스를 보여 드림니다. 매우 평이한 길이란 것을 알수 있습니다. ['정령치'로 가는 길] 高度가 낮아지니 할짝 핀 진달래인지 철죽인지 붉은 꽃들이 볼것없는 산길을 밝히고 버들강아지도 가끔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라남북도 갈림봉] 3시 40분 ★길 주의 ★ '만복대' 정상에서 30분 정도 휴식을 취하며 사진도 찍어 주고.... 그리고 "전라남북도 갈림봉"에 오니 3시 40분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길을 조심해야하는데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전라남북도 갈림봉 정상] 특별한 것은 없는 전라남북도 갈림봉입니다. '성삼재'에서 여기까지는 전라남도 였습니다만 이제부터 전라북도로 들어 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전라도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백두대간'의 남쪽 구간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線이 '백두대간"이라고 생각 할것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낙동강"은 경상도에 흐르고, 금강이나 섬진강은 전라도에만 흐른다고 고정 관념에 사로 잡혀 있을 것이고, 더더욱 고정관념이 아니라 상식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일것입니다 . 그러나 경상도와 전라도의 행정구역 경계선과 "백두대간"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낙동강이 전라도에 흐르고 있으며, 섬진강은 경상도의 하동으로 흘러갑니다 전라도에 낙동강이 실제 흐르고 있고, "백두대간"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선-道界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전라남도 구례군을 관통하고 다시 전라북도 남원시를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현대인들이...특히 등산을 하는 열성 산객들이 오로지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山經表" 제작의 기본 원칙인 "山自分水嶺"에 입각해 마루금을 그어 산행하면서 부터 자연적으로 발생된 일이라 생각됩니다.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과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인월면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백두대간"은 이 물길을 피해 전라도 내륙을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지도는 백두대간과 관계없이 사람들의 왕래와 생활 관습, 풍습, 언어 생활권을 토대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道界를 만들었으니 "山經表 원칙"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듯합니다. [전라남북도 갈림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가 보입니다. "백두대간"은 대간 다웁지 않게 저 "고기리"를 아슬아슬하게 절묘한 방법으로 관통해서 건너편에 보이는 "수정봉", "여원치", "매요리"로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첫구간을 저 "고기리 삼거리"에서 끊고, 제2구간을 다시 저곳에서 건너편에 보이는 "남원시 운봉읍" 속으로 물길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山自分水嶺"의 원칙을 지키며 北으로 올라 가야 합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백두대간"에서 마루금이 가장 희미한 곳입니다. 그 이유는 낙동강이 전라도 깊숙이 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전라남북도 갈림봉 정상'에서 바라 본 "큰고리봉"] 오늘 산행에서 마지막으로 올라야 하는 "큰고리봉"이 다가 옵니다. 하지만 가운데 "정령치"를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야 하니 마지막 힘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중요한것은 "백두대간"이 저 "큰고리봉"에서 좌측 능선으로 내려 간다는 것입니다. 느낌으로는 "세걸산", "바래봉", "팔랑치"로 직진 해야 할듯 싶지만, 그곳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 앞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여기서 봐야 "백두대간"길을 정확히 알수 있어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정령치' 가는 길] 정령치 가는 길 파란문 "정령치" 가는 길에도 설악의 느낌이 오는 암릉길이 있구나 이제 피려고 하는 풋풋한 꽃내음이 흐드러지려 하는데 지리산 어느 구석 구석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모두 벗어 내고 사랑으로만 가득한 마음으로 도란도란 사랑 이야기 나누며 세상과 소통하며 대자연 속으로 여행을 하며 그리운 님들과 함께 살고 싶어라 [산불감시탑] 4시 "정령치"를 앞두고 산불감시탑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정령치"까지는 5~6분 정도 걸림니다 [산불 감시탑에서 정령치로 내려 가는 계단] 옛날엔 가파랐던 정령치 내려 가는 길이 이제는 계단으로 단장되 있습니다. '정령치' 내려 가는 비탈길도 "참~쉽지요 이-잉" [정령치 휴게소] '진한"의 왕이 "달궁"을 지키도록 "鄭氏" 姓을 가진 장군을 파견해 城을 쌓고 방어를 했다는 "정령치 鄭嶺峙"가 나타납니다. "姓三재"와 함께 지리산을 조망하기 좋은 위치에 있는 鄭嶺峙는 "달궁계곡"을 지키는 요새 였을 것입니다. "큰고리봉"으로 올라 가는 능선에 아직도 그 옛날 山城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휴게소 뒤로 "큰고리봉"이 인상적입니다. [정령치] 4시 10분 "鄭嶺峙"는 요즘 환경보호단체들로부터 집중 공격 대상이 되고 있더군요. 이곳에 이렇게 자동차 도로를 내서 동물들의 이동 통로가 막혀 생태계에 많은 악영향을 준다고..... 하지만 관광객들에겐 환영 받을 것이고..... "반야봉"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옵니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바라 보는 "智異山"] "鄭嶺峙 휴게소"에서 바라 보는 지리산 주능선----- 한눈에 볼수 있습니다 다음 사진에서 지리산 주능선에 대해 자세히 설명 드림니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바라 보는 "智異山"] 智異山 主稜線을 한눈에 볼수 있는 곳은 이곳이 최고가 아니겠는가 생각 됩니다. 智異山 主稜線의 거리가 일백리, 즉 약45km정도되니 한눈에 보기가 어렵습니다만 이곳에서 대부분이 보인다는 것은 이곳의 地勢가 좋다는 것입니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고기리"] "정령치"에서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를 내려 다 보면, 우측에 "큰고리봉"에서 "고기리"로 내리 뻗은 조그만 산줄기가 "백두대간"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가운데 저수지를 포함한 물줄기는 섬진강으로 흘러가고 바로 옆 조그만 산줄기인 "백두대간" 우측의 물줄기는 "낙동강"으로 흘러 갑니다. 이렇게 낙동강은 전라도 깊숙히 들어 와 있으며 이 낙동강 줄기 때문에 "백두대간"은 아슬아슬하게 희미한 마루금을 만들며 전라북도 남원시를 관통하며 빙~둘러 가는 것입니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올려다 본 "큰고리봉"] "백두대간"이 "고기리"로 급낙하 하는 기점이 되는 "큰고리봉"이 800m앞에 솟아 있습니다 ['정령치 휴게소' 의 "큰고리봉 입구"에 있는 이정표] 4시 20분 지리산 바래봉의 철죽은 매우 유명합니다. 하지만 다음주 쯤에 만개 할듯하고 이곳은 5월 하순은 되어야 될듯.... ['정령치'에서 '고기리'까지 구글어스] "정령치"에서 "큰고리봉"을 지나 "고기리"까지 구글어스입니다. "백두대간"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 드리지만 "큰고리봉"에선 길 조심을 해야 합니다. ['큰고리봉' 중턱에서 뒤돌아 본 "정령치"] 햐~ 아름답습니다. 저의 글 솜씨로는 표현할수가 없군요. 그래서 조선 중기의 유명한 문신이었던 "기대승 奇大升"선생이 지은 "두류산을 떠나며"라는 漢詩를 번안하여 들려 드리겟씁니다. 別頭流山 기대승 奇大升 아름답고 맑은 산 여기에 궁진하니 / 扶輿淸淑此焉窮 광대한 두류산 기세가 웅장코나 / 磅礴頭流氣勢雄 만고토록 하늘에 비껴 볼수록 망망하고 / 萬古橫天瞻莽莽 삼재가 북극에 조공하니 우러를수록 높도다 / 三才拱極仰崇崇 원기가 굳게 보호하니 퍼지다 도로 뭉치고 / 元精固護張猶翕 잠긴 혜택 유행하여 느끼면 통하누나 / 潛澤流行感卽通 많은 사람 왕래하여 끊임없으니 / 多少往來人不盡 충융을 비장한 영경이 되려 부끄럽네 / 却慙靈境秘冲融 ['큰고리봉'으로 오르는 길] "白頭大幹"을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이 땅의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 그것이 백두대간입니다. 다른 말로 비유하자면 "뿌리를 백두산 ‘하늘연못’에 두고 지리산을 꽃피운 한 그루 커다란 나무"가 바로 백두대간입니다 ['큰고리봉' 바위들] "만복대"와 같이 산 정상 부근에는 바위군들이 안간 힘을 쏟으며 살아 남아 있습니다. 7,500만년의 풍상을 이겨내고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늙은 바위들입니다. [큰고리봉 정상] 4시 40분 해발 1,305m높이의 "고리봉"은 성삼재 앞에 있는 1,248m의 고리봉과 구별하기 위해 "큰고리봉"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산도 아주 옛날 어느 곳엔가 하동에서부터 남원으로 올라 오는 배를 묶어두던 고리가 있엇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큰고리봉 정상 이정표] ★길 주의 ★ 이곳에서 "바래봉" 방향으로 가면 절대 않됩니다. 느낌 같아서는 "바래봉"방향이 백두대간 같지만, 백두대간은 "고기리"로 내려 갑니다. ['큰고리봉' 정상에서 뒤 돌아본 "만복대"] '큰고리봉' 정상에서 다시 한번 '정령치"와 '만복대"를 뒤돌아 보고 이제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약없는 이별을 합니다. "지리산아 잘있거라." ['큰고리봉'에서 '고기리'로 하산하는 길] '큰고리봉' 정상에서 "고기리"까지는 급경사 내리막입니다. 그리고 거리도 제법 멀어 약1시간 정도 걸림니다. ['고기리 삼거리'로 내려 가는 데크] '고기리' 근처에는 급경사를 계단으로 보완해 놨습니다. [고기리 삼거리] 6시 10분 "성삼재"에서 약6시간 30분이 걸려 "고기리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도상거리 11.1km [고기리 삼거리 이정표] "고기리 삼거리"는 "정령치"로 올라 가는 길과 "남원시내"로 들어 가는 삼거리였습니다. [祭堂] '고기리 삼거리에서 계곡쪽으로 '祭堂'이 있고, 그 윗쪽 공터에서 "山神祭"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어 올라 갔습니다. [14기 山神祭] 이번에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제14기 회원님들의 무사 완주를 기원하는 "山神祭"를 지냅니다. 거인산악회에서 정성드려 준비한 음식들을 앞에 놓고 祭禮를 드림니다 [14기 山神祭] 여러분들의 동반자 '파란문'도 기원합니다. "14기 여러분들이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을 하며, 백두대간을 완주 하시기를..." [최연소 참가자] 이번 백두대간 종주에 참가한 최연소 참가자 "이 주형"군과 아빠입니다. '이 주형'군은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체력적으로 염려되어 참여 못하고 계시는 분들은 용기를 가져도 좋겠지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도 참가하여 당당히 첫구간을 완주했는데..... [최고령 참가자] 이번 백두대간 종주에는 또한 최고령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나이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볼때는 자랑스런 어르신이라 소개해 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금년에 7학년 4반 이시라는 "김원기 선생님"입니다. 4~5십대 젊으신 분들은 이제 핑개꺼리가 없어졌죠? 힘들어도 표정 지으면 않되겠죠? ㅎㅎ 함께하신 14기 여러분들 만나서 함께 대자연 속으로 여행을 함께 할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5월 22일(토) 두번째 구간에서 다시 만날때엔 더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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