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국내 재벌 중 최대 가계도 자랑
주간경향 | 입력 2004.08.27 12:12
창립 때부터 최근까지 LG그룹에 참여한 구씨와 허씨 일가 사람은 수십 명에 이른다. 두 집안에서 3대에 걸친 것인 데다, 양가 모두 다손이어서 다른 재벌에 비해 유달리 많은 편이다. 그래서 국내 재벌 중 가계도가 가장 복잡하다. "친족경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 양가의 복잡한 가계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창업과정부터 살펴봐야 한다. LG의 창업자는 고(故) 구인회 창업회장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구 창업회장의 장인인 고 허만식씨와 6촌간이자 만석꾼인 고 허만정씨는 평소 사돈가의 젊은 사업가인 구 창업회장의 사업역량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출자를 제의했다. 아울러 허씨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자신의 셋째아들인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구 창업회장의 첫째동생인 구철회씨의 맏사위)의 경영수업도 의뢰했다. 구 창업회장은 이 두 가지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양가는 사업적인 측면의 끊을 연결하게 됐다. 이후 양가 사람은 지속적으로 경영에 참여해 오늘에 이르게 된다. 아무래도 경영을 주도했던 구씨 일가가 허씨 일가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경영일선에 나섰다. 구인회 창업회장의 자녀는 6남 4녀. 장남은 구자경 LG 명예회장이다. 구 명예회장은 구 창업회장의 뒤를 이어 LG그룹의 2대 회장을 역임했다. 물론 3대 회장은 구본무 LG 회장이다. 구 회장의 첫째동생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다.
구씨-허씨 집안 "인화"의 비결은? LG는 구씨와 허씨 양가 함께 동업하는 체제에다 다손(多孫)이어서 LG 관련사의 대주주는 보통 100여 명에 육박했다. 예컨대 (주)GS홀딩스는 구씨 일가 50명, 허씨 일까 48명이 각각 특수관계인으로 구성돼 있어 무려 98명이 대주주로 등재돼 있다. 그런데도 양가는 성공적인 동업을 유지해왔다. 가지가 많아 바람 잘 날이 없을 것 같은 데도 심각한 불협화음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부작용은 있었지만 스캔들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제경영학계의 연구대상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근저에는 "인화"가 짙게 깔려 있다. 최종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경영사학회 연구총서에서 LG의 인화정신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고의적 잘못을 해도 정으로 감싸는 어정쩡한 가족주의나 온정주의가 아니라 상호합의한 원칙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는 엄정한 책임의식이 전제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양가의 인화정신의 창업 1, 2대를 거쳐 3대로 내려오면서도 변함없이 LG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는 얘기다. 유교적 가풍도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엄격한 위계질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구-허씨 양가는 모두 자손이 많은 집안들이지만 모두 유교적 가풍에 의해 교육을 받았고, 이러한 영향으로 엄격한 위계질서가 자리잡고 있다. 자손이 많다보니 연상의 조카, 연하의 삼촌이 허다하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조카가 자신을 "자네"라고 부르는 젊은 숙부에게 깍듯이 머리를 조아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한다. 이런 전통이 살아 있기에 양쪽 가문은 많은 동생과 조카들을 일사불란하게 컨트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가풍과 위계질서로 인해 장자 우선의 원칙은 항상 지켜졌고, 동생들은 순응했다. 물론 딸들은 경영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 LG그룹의 가계도를 그리다보면 여자들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구씨와 허씨의 관계에서도 하나의 "룰"이 있었다. 구씨 일가가 주를 허씨네가 보를 맡는 불문율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57년간 철저하게 지켜졌다. 이를 위해 자손들이 경영에 참여하면서도 지분구조를 철저하게 유지해 분란의 소지를 없앴다. 구씨와 허씨 일가의 지분은 늘 65% 대 35%였다. 이같은 원칙은 그룹의 분할과정에서도 지켜졌다. 즉, (주)LG의 100주에 대해 (주)LG 65주와 (주)GS홀딩스 35주를 나눠준 것이다.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
희성그룹은 1995년 LG그룹에서 떨어져나왔다.
희성그룹은 희성전자-희성정밀-희성금속-한국잉겔아드-희성화학-삼보지질 등 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구본능 회장은 실질적 지배회사인 희성전자의 지분을 38.1%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구본무 회장의 셋째동생인 본식씨(희성전자 부사장)가 25.4%의 지분을 보유, 2대주주로 등재돼 있다.
구본무 회장의 두 동생이 그룹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구본능 회장은 경남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럭키금성상사-금성통신에서 잔뼈가 굵었다.
1988년 희성금속에 몸을 담아 92년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구본무 회장 동생 중 LG에 남아 있는 인물은 둘째 동생인 구본준 LG필립스LGD 부회장이다.
재계에서는 구 부회장을 "태풍의 핵"으로 보고 있다.
이유는 후계구도 때문. 3대 회장인 구본무 회장은 현재 아들이 없다.
철저하게 여자는 경영에서 배제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 LG 정서상 "대타"를 마련해야 하는 형편이다.
물론 이 원칙이 깨질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구본무 회장의 둘째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이 4대 그룹 회장으로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구본준 부회장이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인 데다
LG전자-LG화학-LG반도체 등 LG의 핵심계열사를 두루 거치면서 경영수업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구인회 창업회장 자녀는 6남4녀 구인회 창업회장의 직계가족 외에도 경영에 참여한 인물이 많다.
구 창업회장은 그룹을 일구는 과정에서 5명의 동생들을 끌어들였다. 첫째동생은 고 구철회씨다.
그의 아들들은 LG화재해상보험을 맡고 있다.
1999년 11월 LG그룹에서 독립한 LG화재해상보험은 현재
고 구철회씨의 장남인 자원씨가 명예회장으로,
셋째인 자훈씨가 회장으로,
4남인 자준씨가 사장으로 각각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구 창업회장의 둘째동생인 고 구정회씨의 경우 4남인 구자섭씨는 LG MMA 사장이며, 5남인 구자민씨는 LG전자 상무를 맡고 있다.
마지막으로 LG전선그룹을 운영하고 있는 "태평두 일가"다.
이들은 구 창업회장의 셋째동생인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
넷째동생인 구평회 E1명예회장,
다섯째동생인 구두회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의 일가로 세 사람의 이름 앞자만 따서 "태평두 일가"로 불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LG그룹으로 계열분된 LG전선그룹은 LG전선, LG니꼬동제련, E1(옛 LG칼텍스가스), 극동도시가스 등 기존 8개사에 최근 LG산전, 희성전선, 파운텍 등 인수한 5개사까지 총 13개 기업(해외법인 등 제외)으로 구성됐다.
구태회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홍 LG전선 회장 겸 LG산전 회장이 외견상 그룹회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아직 뚜렷하게 그룹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구자홍 회장은 LG전자 회장을 거치며 "디지털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잘 알려진 최고경영자(CEO)다. 차남인 구자엽씨는 희성전선 부회장, 3남인 구자명씨는 극동도시가스 부회장으로 있다. 구평회 EI 명예회장의 장남은 구자홍 회장과 함께 LG전선그룹을 이끄는 구자열 LG전선 부회장이다. 재계에서는 LG전선그룹을 구자홍-구자열 투톱체제로 보고 있다. 구자열 부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1978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했다. LG투자증권 등에서 근무했으며 2001년 LG전선 재무담당 부사장으로 옮긴 후 2003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구평회 명예회장의 차남인 구자용씨는 E1 부사장을 맡고 있으며 구두회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은씨는 LG전선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동생인 자승-자학-자두-자일-자극씨도 직-간접적으로 LG그룹에 적을 뒀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현재 모두 LG에서 분가했다.
2000년 3월 자두씨가 회장으로 있는 LG벤처투자가 계열 분리됐다.
그의 자녀들인 본천씨, 본완씨, 혜란씨, 혜선씨 등이 대주주로 돼 있다.
구자두 LG벤처투자 회장은 경기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 상대를 거쳐 미국 워시번대와 뉴욕시립대에서 학-석사학위를 땄다. 1959년 럭키화학 관리과장으로 입사, 금성통신 사장, LG유통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핵심경영인으로 활동해왔다. 구 명예회장의 둘째동생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도 2000년 9월 아워홈과 함께 LG에서 계열 분리했다. 아워홈은 단체급식 등을 영위하는 업체로 지난해 매출액이 4천4백억원에 이르는 중견기업이다. 그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3녀이자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씨와 결혼, 화제를 뿌렸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호텔신라-중앙개발 사장을 역임하는 등 삼성그룹에서도 활동했다. LG에서는 금성사 사장, LG반도체-LG건설 회장 등을 거쳤다. 작고한 구자승 전 LG상사 사장과 장남인 본걸씨도 LG그룹 가계도에 이름을 걸치고 있다. 그는 LG상사 부사장이자 7.52%의 지분을 갖고 있다. 구본걸 부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와튼 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 1990년 LG그룹 회장실로 입사, LG증권-LG산전 등을 거쳐, 지난 1월 LG상사 부사장이 됐다.
허만정 아들 8명 모두 기업인의 길 허씨 일가도 구씨 일가 못지않은 방대한 가계도를 자랑한다. 구인회 창업회장에 자금을 대준 허만정씨의 아들 8명이 모두 기업인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보조역할이어서인지 구씨보다는 적은 편이다. 허만정씨의 아들 8명 중 창업 초기부터 LG에 몸담았던 이는 차남 학구씨와 3남 준구씨, 그리고 4남 신구씨 세 사람이다. 학구씨는 LG전선 부사장을 지냈으며 신구씨는 한국 최초의 합성세제인 "하이타이" 개발의 주역이다. 허신구 LG유통 명예회장은 부산대 상학과 출신으로 금성사 사장, 그룹 부회장 등을 지내며 LG그룹 성장에 일조했다. 나이가 이들보다 훨씬 어린 8남 허승조씨는 현재 LG유통 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서울고-한양대 출신으로 LG패션을 거쳐 2002년 LG유통으로 옮겼으며 GS그룹 내에서 일정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허만정씨의 장남은 고 허정구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이다. 허정구씨는 LG경영에 참여한 대부분의 친족들과 달리, 삼성의 주력사로 성장한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창업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이후에는 나이키 제품 등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삼양통상을 설립했다. 현재 장남인 허남각씨가 회장을 맡고 있다. 허정구씨의 차남은 허동수 LG칼텍스정유 회장으로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함께 LG의 "허씨 3세대"를 대표하던 인물이다. 허동수 회장은 30년 근속상을 받았을 정도로 정유업종의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이 때문에 국제 석유-화학업계에서 "한국의 닥터 허"로 불릴 만큼 해박한 이론과 풍부한 경험을 자랑한다. 그는 국내 최초로 휘발유에 브랜드(LG테크론) 개념을 도입할 만큼 경영감각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화학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1973년 호남정유에 입사했다. 미국 석유회사 셰브론 산하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한 적이 있어 이론적 배경과 현장경험을 겸비한 경영인을 평가받고 있다. GS그룹에서도 허창수 회장 다음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허동수 회장 바로 밑의 동생인 허광수씨는 골프용품과 말보로 담배를 수입해 판매하는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허준구 전 명예회장의 아들 5형제는 모두 LG경영인이다. 장남 창수씨를 비롯, 차남 정수씨(LG기공 사장), 3남 진수씨(LG에너지 사장), 4남 명수씨(LG건설 부사장), 5남 태수씨(LG홈쇼핑 부사장) 등이다. 허신구 LG유통 명예회장의 장남인 허경수씨는 PVC, 가스배관, 온돌 파이프 등을 생산하는 코스모그룹을 이끌고 있다. 경수씨는 LG전자 미국법인과 도쿄 사무소 등에서 근무하다 독립해 창업했다. 허만정씨의 5남인 허완구씨는 한때 LG에 근무했으나 1969년 승산을 설립하며 화물운송업에 뛰어들었다. 6남인 허승효씨(60)는 조명전문회사인 알토를 운영하고 있으며 7남인 허승표씨(58)는 기업체 홍보영상물 등을 제작하는 미디아트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렇게 복잡한 관계를 갖고 있다보니, 양가의 분리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때문에 증시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일반 주주들의 이해관계는 도외시한 채 친-인척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계열사 합병과 분리를 거듭한다든가, 시장의 상식에 반하는 주식 자전거래로 투자자들로부터 원성을 들었던 것이다.
구씨-허씨 집안 "인화"의 비결은? LG는 구씨와 허씨 양가 함께 동업하는 체제에다 다손(多孫)이어서 LG 관련사의 대주주는 보통 100여 명에 육박했다. 예컨대 (주)GS홀딩스는 구씨 일가 50명, 허씨 일까 48명이 각각 특수관계인으로 구성돼 있어 무려 98명이 대주주로 등재돼 있다. 그런데도 양가는 성공적인 동업을 유지해왔다. 가지가 많아 바람 잘 날이 없을 것 같은 데도 심각한 불협화음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부작용은 있었지만 스캔들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제경영학계의 연구대상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근저에는 "인화"가 짙게 깔려 있다. 최종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경영사학회 연구총서에서 LG의 인화정신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고의적 잘못을 해도 정으로 감싸는 어정쩡한 가족주의나 온정주의가 아니라 상호합의한 원칙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는 엄정한 책임의식이 전제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양가의 인화정신의 창업 1, 2대를 거쳐 3대로 내려오면서도 변함없이 LG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는 얘기다. 유교적 가풍도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엄격한 위계질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구-허씨 양가는 모두 자손이 많은 집안들이지만 모두 유교적 가풍에 의해 교육을 받았고, 이러한 영향으로 엄격한 위계질서가 자리잡고 있다. 자손이 많다보니 연상의 조카, 연하의 삼촌이 허다하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조카가 자신을 "자네"라고 부르는 젊은 숙부에게 깍듯이 머리를 조아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한다. 이런 전통이 살아 있기에 양쪽 가문은 많은 동생과 조카들을 일사불란하게 컨트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가풍과 위계질서로 인해 장자 우선의 원칙은 항상 지켜졌고, 동생들은 순응했다. 물론 딸들은 경영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 LG그룹의 가계도를 그리다보면 여자들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구씨와 허씨의 관계에서도 하나의 "룰"이 있었다. 구씨 일가가 주를 허씨네가 보를 맡는 불문율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57년간 철저하게 지켜졌다. 이를 위해 자손들이 경영에 참여하면서도 지분구조를 철저하게 유지해 분란의 소지를 없앴다. 구씨와 허씨 일가의 지분은 늘 65% 대 35%였다. 이같은 원칙은 그룹의 분할과정에서도 지켜졌다. 즉, (주)LG의 100주에 대해 (주)LG 65주와 (주)GS홀딩스 35주를 나눠준 것이다.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