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들

1995.6.29 삼풍백화점 붕괴

그낭 그럿게 2011. 8. 21. 00:08

1995.6.29 삼풍백화점 붕괴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김영삼 대통령 재임 기간은 일대 사건의 연속이었다. 목포에서는 아시아나 항공기가 떨어지고 격포에서는 여객선이 가라앉았고 구포에서는 열차가 탈선해서 사람들이 떼죽음을 했다. 하늘 땅 바다에서 골고루 사고가 나더니 멀쩡하던 한강 다리가 끊어졌고 급기야 1995년 6월 29일 오늘 부유층의 쇼핑 코스로 이름 높던 삼풍 백화점이 통째로 무너지고 만다. 단일사고로는 대한민국 건국 후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이었다. 사망자는 5백이 넘고 부상자까지 합치면 1400명이 넘는다.
...
건물 더미에 갇혀 있다가 극적으로 구출된 어떤 이는 오래도록 악몽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그 악몽의 소재는 '소리'였다. 자신보다 조금 아래쪽에 한 명이 깔려 있었고 둘은 대화를 나누면서 공포를 잊고 있었는데 건물 붕괴 중에 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방차가 물을 뿌리면서 아래쪽으로부터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어 물이 올라오네 어떡하지?" "괜찮아요?" "자꾸 물이 올라와요." "어떻게 해....."

잠시의 대화 후 들려온 것은 물 첨벙이는 소리, 그리고 사람의 숨이 막혀 가는 소리였다. 끄륵 끄륵 큭 큭 그리고 잠시 후 찾아온 침묵. 그 소리는 몇 년이 지나도록 한 사람의 뇌 구석에 틀어박혀 있다가 뻔질나게 올가미처럼 그 목을 조른다고 했다. 끄륵 끄륵..큭.. 큭

그 뿐 아니라 수백 수천 명에게 지울 수 없는 악몽을 안겼던 삼풍백화점의 주인의 이름은 이준. 2003년 작고한 그는 일본군 밀정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단련된 눈치와 재빠름으로 그는 해방 후 중정요원이 되었다가 건설사 사장으로 변신한다. 그가 가장 재미를 본 건 역시 부동산이었다. 청계천 복개 사업 이전에 청계천 주변의 땅을 사들였고 강남이 개발되기 전에 강남 땅을 접수했고, 제주도 중문단지가 그 이름이 생겨나기도 전에 그 요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미지 식물원'이 바로 그의 소유였다.

이준은 애초에 아파트 단지의 상가로 설계된 시설을 백화점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한다. 시공사 우성건설은 붕괴의 위험이 있다며 이를 거절했고, 이준은 자신의 회사인 삼풍건설에 이 일을 맡긴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탐욕만큼 빠르고도 정확하게 공유되는 것이 어디 있으랴. 원래 설계상 기둥의 둘레는 32인치였지만 실제로는 23인치로 줄었다. 그 다이어트(?)의 댓가는 다들 알아서 챙겨 드셨다. 천정이 내려앉고 바닥이 꺼지고 전기가 나가는 붕괴 위험 징후가 여전한데도 이준은 "칸막이를 치고 영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준의 말은 아니지만 그때 간부회의 가운데 나왔다는 말은 떠올릴 때마다 치를 떨게 한다. "하루 매상이 얼만데....."

매상 포기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한 걱정이 사람 목숨에 대한 우려를 이긴 것이다. 기업들의 존재 이유는 '이윤 추구'라지만 이윤에 대한 집착은 5백명이 넘는 사람들의 저승사자가 되어 버렸다. 안되면 되게 하고, 웬만하면 밀어붙이고, 안전이나 인권 따위는 거추장스런 모래주머니로 취급하던 시대가 그들을 죽인 것이다. 바로 자신의 발 밑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차오르는 물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도와 줄 수도 없는 그 막막함을 뼈에 새기게 했던 것이다.

삼풍이 무너진 한국판 "그라운드 제로"에는 이미 대상 아크로비스타가 우렁차게 섰다. 그리고 붕괴의 굉음이 대한민국을 흔든 지도 16년이 지났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 따위, 생존의 절박한 이유 따위가 대차대조표상 적자 아니냐는 호통에 사그라드는 풍경은 여전히 목격되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누군가는 끄륵거리면서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걸 못 들으면 다행인 걸까. 그런데 물이 계속 차오르고 있다면 어떡할까.


 

by 산하 | 2011/07/01 16:04 | 산하의 오역 | 트랙백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nasanha.egloos.com/tb/1073640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11/07/01 21: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산하 at 2011/07/03 21:24
허어 그런 마음 아픈 일이.....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ed by MAC at 2011/07/02 03:36
입시 준비때 이 근방 학원을 다녔어요.
왠지 모르게 아크로비스타 들어가는 게
겁났던 기억이 나네요.
Commented by 산하 at 2011/07/03 21:24
저도 무섭더라구요 언젠가 밤에 혼자 그 건물 근처를 지나는데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